[강진규의 데이터 너머] 쉽지 않은 '데이터 기반' 통화정책

4 weeks ago 7

[강진규의 데이터 너머] 쉽지 않은 '데이터 기반' 통화정책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정책금리를 연 4.25~4.50%로 동결한 뒤 다음 금리 인하 시점을 묻는 질문에 “데이터를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터에 기반해 통화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원론적 답변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 발언에 이어 이날 크리스토퍼 월러, 미셸 보먼 Fed 이사의 ‘금리 인하’ 소수의견이 나온 상태여서 정치적 압력에 선을 긋는 메시지로도 읽혔다. 다만 데이터 기반 통화정책이 반드시 중립적인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상충하는 다양한 데이터가 있을 때 무엇을 더 고려할 것인지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어서다.

실업률 vs 취업자 수

지난 1일 나온 미국의 7월 고용보고서도 같은 발표를 놓고 두 가지 해석이 제기된다. 파월 의장은 “주목해야 하는 핵심 지표는 실업률”이라고 말했다. 고용 창출은 줄어들고 있지만 실업률은 안정적인 만큼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미국 실업률은 지난 5월 4.2%, 6월 4.1%, 7월 4.2%로 대체로 비슷했다.

[강진규의 데이터 너머] 쉽지 않은 '데이터 기반' 통화정책

반면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봤던 월러 이사는 “민간 부문 고용 증가가 정체 수준에 가깝다”며 취업자 증가 폭에 주목했다. 신규 취업자 수는 이번 고용보고서에서 ‘쇼크’ 수준으로 평가된 지표다. 7월 고용은 예상치(11만 명)를 크게 밑돌아 약 7만 명 증가에 머물렀고, 5월과 6월 지표는 기존 발표치보다 25만8000명 하향 조정됐다. 실업률을 근거로는 금리를 동결할 수 있고, 취업자 수를 기준으로는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일각에선 월러 이사의 소수의견이 트럼프 대통령과 코드를 맞춘 정치적 결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데이비드 안돌파토 미국 마이애미대 교수는 최근 칼럼에서 월러 이사의 반대표를 “데이터에 기반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안돌파토 교수는 “월러 이사는 인플레이션 하락, 높은 실질 이자율, 일자리 증가세의 냉각 등을 보고 합리적으로 (금리 인하를) 주장할 수 있다”고 옹호했다.

한은의 결정은?

그러면서 2019년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총재의 ‘반대표’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Fed에 금리 인하를 요구했고, 불러드 총재는 두 차례나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목소리를 냈다. 안돌파토 교수는 당시 세인트루이스연은 수석부총재였고, 월러 이사는 연구책임자였다.

같은 보고서에 나온 두 개 수치를 두고도 의견이 갈릴 수 있는데, 서로 다른 지표가 상충하는 방향으로 나올 경우엔 데이터 기반 통화정책이 더욱 힘들어진다. 비중을 두는 데이터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서다. 예컨대 미국 고용시장이 냉각되고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관세 부과 효과로 인플레이션이 확대될 조짐을 보인다면, 물가와 고용이라는 두 가지 책무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도 데이터에 기반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은행 역시 이달 말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상충하는 데이터를 놓고 결정을 해야 할 수 있다. 경기는 아직 충분히 살아나지 않았지만 소비 등에서 미세한 회복 신호가 감지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달 금리 동결의 가장 큰 요인이었던 집값은 아직 크게 내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의 거시건전성 대책 시행 이후 상승세는 확연히 꺾였고, 가계부채 증가세도 둔화하는 흐름이다.

환율은 미국의 상황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널뛰기하고 있고, Fed가 금리를 동결해 한·미 금리 격차가 2.0%포인트로 크다는 점은 금리를 내리는 데 부담 요소다.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동결도, 인하도 가능하다. 상충하는 데이터 사이에서 경제에 대한 정확한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