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 누가 더 한국 시장에 진심인가

4 hours ago 1
함봉균 기자함봉균 기자

우리나라 전기차 시장이 '성능의 시대'를 지나 '책임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발표한 '전기자동차 보급사업 수행자 선정 평가 기준'은 이런 변화의 신호탄이다.

정부는 사후관리 역량과 국내 산업 기여도를 정밀 심사해 80점 이상의 '합격점'을 받은 기업에만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히 성능 좋은 차를 수입해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엄격한 잣대 위에서 미국 테슬라와 중국 BYD 등 글로벌 전기차 거인 중 누가 한국 시장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테슬라의 행보는 기술력에 취한 '독선'에 가깝고, BYD의 출발은 시장의 규칙을 존중하는 '진정성'에 가깝다.

테슬라는 2017년 진출 이후 17만대 넘는 차량을 판매하며 독보적 전기차 1위를 지켜왔다. 하지만, 화려한 실적 이면에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쌓여 있다. 누적 판매량이 17만대를 넘어선 지금까지도 직영 서비스 센터는 전국에 고작 13곳 남짓이다. 판매량 대비 인프라 비중을 따져보면 가히 '방치' 수준이다.

테슬라는 그간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며 정비 편의성 요구를 외면했다. 이는 '우리의 방식이 옳으니 소비자가 적응하라'는 공급자 중심적 독선이다. 하지만, 물리적 결함은 소프트웨어로 고칠 수 없다. 인프라 구축을 외면한 채 '일단 팔고 보자'는 영업은 한국을 단지 '캐시카우'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기후부의 새로운 기준이 '물리적 실체'를 요구함에 따라, 테슬라가 보조금 대상에서 탈락 1순위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이에 반해 지난해 국내 승용 시장에 명함을 내민 BYD의 행보는 사뭇 대조적이다. BYD는 차량을 대량으로 인도하기 전부터 서비스 네트워크 확충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재 17개 서비스 센터를 확보했으며, 연내 26개까지 늘리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실행 중이다. 이는 누적 판매량이 테슬라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시점에서 내린 선제적 결정이다.

특히 BYD가 내세운 '6년 또는 15만㎞'라는 파격적인 보증 정책은 기후부가 강조하는 '지속 가능한 사후관리 역량'과 궤를 같이한다. 이 정책은 중국 브랜드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한국 소비자들에게 '책임지는 브랜드'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정부의 보조금 정책 변화는 '한국에서 차만 팔고 돈을 벌어가는 기업'과 '한국 자동차 생태계와 함께 성장하려는 기업'을 가려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기술적 우월감에 빠져 현지 인프라 투자를 미루는 브랜드와 한국 소비자 눈높이에 맞추려는 브랜드 중 누가 더 진심인지는 자명하다.

자동차는 개인의 소중한 자산이자 생명과 직결된 이동수단이다. 내 차가 고장 나면 즉시 고칠 수 있고, 제조사가 정부의 기준을 통과해 그 책임감을 증명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다. 이름값과 자율주행 기술에 매료돼 정비의 불편함을 당연하게 감수하는 것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제조사의 '진심'은 화려한 광고나 CEO의 트윗이 아니라, 내 집 근처의 정비소와 소비자를 대하는 책임감에 담겨 있다. 국내 전기차 보급 100만대를 넘어 대중화가 시작된 지금, 소비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기업의 독선적 태도를 교화하고 진정성 있는 투자를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길 기대한다.

함봉균 기자 hbkone@etnews.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