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3월 31일은 우리나라 공공조달 역사에 큰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국가전자조달 시스템인 '나라장터'를 2002년에 개통한 이후 약 23년만에 새로운 '차세대 나라장터'로 선보인 것이다. 7만여 수요기관, 60만여 조달기업이 나라장터를 이용하고, 이 공간에서 연간 130조원 넘게 거래된다.
예산집행, 인증, 대금지급 등 230여개 외부시스템과 연결된 가장 복잡한 정부 전자시스템이기도 하다. 이러한 차세대 나라장터를 큰 오류나 잡음 없이 성공적으로 개통했다고 자부한다.
무엇보다도 '절박함'이 가장 컸다. 차세대 나라장터를 꼭 성공적으로 개통하고 싶었다.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수요기관과 조달기업이 발을 동동 구르거나, 조달청이 국민으로부터 비난받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복지망, 교육망 등 근래 우리 정부가 수행한 차세대 정보화 사업이 순탄하지 않았는데, 차세대 나라장터마저 실패해서 대한민국 전자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ET시론] 차세대 나라장터 성공개통 '소통'과 '준비'의 힘](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04/29/news-p.v1.20250429.5f248ea3b40649d9ae376e3f249c7bfd_P1.jpg)
이러한 절박함은 '끊임없는 소통'과 '철저한 준비'로 이어졌다. 시스템 사용자와의 소통은 곧 사용자 테스트다. 약 1500명의 테스터를 모집해 피드백을 받은 것은 물론,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공개 테스트와 사전 체험도 실시했다. 공개 테스트에 약 21만명의 예비사용자가 참여했는데, 공공 시스템 중에 이렇게 무작위 공개 테스트를 실시한 사례는 처음이라고 들었다.
업무를 담당한 구축추진단 직원뿐 아니라 조달청 전 직원들이 참여해 4000여개 기능을 하나씩 점검해가며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점검 빈도와 강도를 개통 임박에 따라 단계적으로 높였다. 개통 전 총 4차례에 걸친 리허설, 반복적인 성능과 부하테스트, 50회가 넘는 기관장 주재 개통 TF 운영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개통 한 달 전부터 개통 후 두 달 동안은 비상상황실을 운영하며 매일 점검하고 즉시 대응한다.
조달기업 입장에서는 낯선 시스템을 잘못된 시스템으로 인식하기 쉽다.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어색함과 기존 시스템에 대한 익숙함 간의 차이가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예비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지역별 교육을 실시했고 동영상, 안내책자 형태의 다양한 매뉴얼도 배포했다. 개통 초반 집중적인 '로그인'을 분산하기 위해 23만명 이상의 이용자가 사전에 등록하도록 유도했다. 등록을 어려워하는 기업은 지방조달청으로 노트북만 들고 오면 우리청 직원들이 직접 등록을 도와줬다.
정보화 시스템 개통 초기 안정화 기간 동안에는 소소한 오류가 발견되고 이를 고치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발생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있다. 시스템이 상당 시간 전면 다운되는 상황. 데이터 입력이나 산식의 오류로 낙찰자를 다시 정해야 하는 상황. 대금지급, 특히 하도급 대금지급이 지연되는 상황. 이러한 세 가지 경우는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오류의 유형을 정하고 '모니터링-오류발견-신속대응'의 체계를 일사분란하게 가동했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성공개통이라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ET시론] 차세대 나라장터 성공개통 '소통'과 '준비'의 힘](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04/29/news-p.v1.20250429.b09eb9e40ea14b17994a45c3b754ced3_P1.jpg)
감사드려야 할 분들이 많다. 조달청 콜센터와 구축추진단 직원들은 인사 이동도 동결된 채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다른 직원들도 고유 업무와 별개로 나라장터 개통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 주었다. 테스트에 열성적으로 임해준 수요기관과 조달기업, 그리고 조달청과 한 몸으로 움직여 준 SK, 대원씨앤씨, 바이브컴퍼니 등 구축사업자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편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사용자가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이 어디인지, 환경 변화에 따라 대비가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예컨대, 이번에 새로 장착한 챗봇은 아직 초기 단계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수준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조달 통계를 활용한 맞춤형 전망도 더욱 세밀하게 다듬어야 한다.
양궁의 김우진 님, 역도의 박혜정 님, 태권도의 이다빈 님 등 내로라하는 국가대표들과 함께 차세대 나라장터를 알리는 동영상을 만들었다. 나라장터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전자조달시스템이다. 아울러 20여년 만에 새롭게 신기술을 장착한 인내와 고통의 산물이다. 스포츠 스타와 차세대 나라장터의 이러한 공통점에 착안했다. “나랏일인데 도와야죠.” 김우진 선수가 촬영장에서 툭 던진 한마디가 무척 고맙다.
'한계를 넘다' 이번 동영상의 제목이다. 경제가 어렵다. 당장의 경기도 살얼음판이고, 앞으로 헤쳐가야 할 숙제의 무게도 가볍지 않다. 내부적으로도 약해졌고 외부 여건도 우호적이지 않다. 하지만, 동영상의 제목처럼 결국에는 가계, 기업 등 모든 경제주체가, 조달청이, 대한민국 경제가 한계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 믿는다.
임기근 조달청장 lkk5@korea.kr
〈필자〉 임기근 조달청장은 1968년 전남 해남 출생으로 광주 송원고와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인디애나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행정고시 36회로 공직에 입문해 기재부에서 약 30년간 재직했다. 기재부 예산실 예산정책과장과 예산총괄과장, 경제예산심의관, 예산총괄심의관, 재정관리관 등을 거쳐 예산통으로 불렸다. 직원들이 선정한 닮고 싶은 상사로 꼽히는 등 기재부 안팎에서 신망도 두터웠다. 2023년 12월 제39대 조달청장으로 취임해 공공조달 행정의 신뢰와 경쟁력 강화에 앞장서고 있다. 취임사에서 밝힌 75년간의 성과와 인프라를 기반으로 조달행정을 한층 더 성장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폭넓은 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업 현장 방문으로 소통을 늘리며 그동안 혁신을 가로막고 있던 규제개선에 올인하는 등 조달시장을 통한 경제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