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고 세계 자동차산업은 큰 혼란에 빠졌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정부와 합심해 시시각각 대책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해외 시장 의존도가 높은 우리 자동차 산업이 사면초가에 빠지고 아래로부터 위기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파고가 덮친 우리 자동차 산업은 중국 만리장성에 부딪혀 넛크래커 형국에 빠지고 있다.
◇극약처방을 내린 트럼프 행정부
우리나라와 미국간 통상마찰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됐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통상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타결했다. 하지만,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후 미국은 자국 이익 우선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10% 보편관세와 대미 무역수지흑자가 큰 국가에 대한 차등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자유무역을 통해 성장한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고 교역 상대국의 경제를 악화시켜 자국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근린 궁핍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자칫 미국의 고립화로 귀결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자동차 산업이 경험해 보지 못한 극단적인 조치를 남발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고관세가 자동차 수입을 억제하고 시장 개방 등 미국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자동차 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고려할 때 미국 자동차 산업이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을 포함한 제조업 고질적 문제 중 하나가 인력 공급이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제조업보다 금융 등 서비스 산업을 육성해왔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정부가 제조업 부활을 부르짖고 있지만 현재와 미래에 제조업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다. 미국은 1999년부터 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 STEM 인력을 육성해왔으나 새로운 신산업이 등장하면서 만성적 전문 인력난에 부딪혀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이 안고 있는 또다른 문제는 혁신 역량 저하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연구개발 투자는 독일과 일본에 뒤진 지 오래고, 최근 전문 인력 해외 이탈도 증가하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은 전통적 제조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AI) 등 서비스 중심 모빌리티 솔루션 업체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수년전 양적 성장을 지양하겠다면서 유럽과 인도 등 해외 공장을 폐쇄하고 북미와 중국 중심의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대량 생산의 대명사인 포드도 성장이 부진하며 미국 자동차 산업의 몰락과 탈공업화의 단초를 제공한 크라이슬러는 해외로 매각, 표류하고 있다. 2003년 등장한 테슬라도 최근 중국 전기차 업체의 파상공세에 따라 힘을 잃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모빌리티 서비스 산업 내에 임금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으며, 미국 디트로이트 자동차 기업의 평균 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일각에서는 이해를 같이하는 국가와 공동 대응을 주장하지만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무역기구와 지역무역협정을 포함한 다자간 협정을 무시하고 쌍무협상을 요구하자 50개 넘는 국가가 협상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한적 관세 감면을 결정했지만 캐나다는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 25% 보복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중국은 34% 보복 관세로 맞서고 있다. 유럽연합(EU)도 미국산 주요 상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일본은 1980년대 미국 요구에 따라 시행했던 수출자율규제(VER)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 뿌리이자 자동차 산업 부활을 추진하고 있는 영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10% 상호 관세에 안도하면서 향후 협상에서 관세를 더 낮추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교역 상대국 모두에 고관세를 부과하면서 시장 개방과 미국 내에 직접투자를 촉진하고 있다. 하지만 최종 목표는 중국의 도전을 뿌리쳐 세계 경제 패권을 유지하는 데 두고 있다.
◇단기 수익성 악화와 중장기 미국 자동차 산업 퇴보 예상
고관세 부과에 대응해 토요타와 혼다는 미국 내에 판매가격을 동결할 계획이다. 현대차·기아도 재고 물량을 고려해 2달간 가격을 인상하지 않을 방침이다. 포드와 스텔란티스는 직원 할인가에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동차 가격 인상 자제 요구를 수용한 면도 있지만 미국 시장 자동차 평균 판매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어 가격 인상은 소비자 부담을 가중해 판매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토요타는 북미 공급 업체에 대한 지원을 모색하고 있으며, 닛산은 르노코리아가 수탁 생산한 바 있는 로그 모델을 미국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중장기 대응 전략을 마련할때까지 대미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업계 수익성 하락과 감원이 증가하고 있다. 이미 스텔란티스는 북미 생산 구조 변경을 위해 감원에 돌입했다. 미국 통상 압력에 따라 미국 자동차 기업과 유럽을 비롯해 여타 국가 기업간 전략적 제휴가 감소하는 대신 여타 국가 기업간 제휴가 증가하면 미국 자동차산업 기술력이 퇴보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기아의 대미 수출 감소와 한국GM(GM한국사업장) 공장 폐쇄 가능성이 재부상했다. 현대차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완전 가동해 수출을 대체하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미국과 멕시코 생산만으로 현지 판매 물량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GM 본사는 아직 공식적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단지 최근 설비 전문가가 한국GM 노후 설비를 살펴보고 갔고 예약이 밀려 있는 한국산 2개 차종의 생산에 주력해 달라는 부탁만 얼마 전 본사를 방문한 한국GM 노조 대표에게 전달했다. 한국GM이 생산하고 있는 2종의 미국 내 생산 이전은 효율성과 환율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산업공동화와 같이 산업계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는 주장은 자제해야 한다. 1980년대 제조업 위기를 맞은 미국에서도 산업공동화 논의가 있었으나 1998년 행정부와 의회가 미국 제조업 공동화 논의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공식 결정했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은 하락했지만 절대 생산액이 감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생산은 413만대로 해외 생산 365만대를 상회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산업공동화 가능성에 대한 주장과 연구가 진행돼왔지만 GDP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은 큰 변화가 없다. HMGMA가 30만대를 현지 생산해 수출을 대체하면 해외 생산이 국내 생산을 10만대 정도 상회할 수 있다. 수출선 다변화를 강조하면서 산업공동화를 우려하는 모순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중국 자동차산업의 국제화와 세계화가 가속하고 있어서 수출선 다변화로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살펴야한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과 고도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세계 자동차 산업 불확실성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고 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무역장벽 보고서와 연초 트럼프 대통령에게 건의한 미국우선통상정책(AFTP) 보고서를 공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보고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통상 정책을 운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큰 틀에서 주요 교역국 불공정 무역 시정과 내수 진작을 통한 무역수지 적자 해소를 추진하고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농산물 수입과 방위비 분담 증대 및 원산지규정 개정과 환율 문제 등을 거론할 예상이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 시장에 이어 미국 시장에서 국산 자동차의 판매가 감소하면 국내 자동차 산업 어려움은 가중될 수 있다. 하지만 향후 협상과 미국 자동차산업의 구조적 문제점을 고려할때 부정적 영향이 단기간에 끝날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는 자동차 산업 고관세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자신들이 기대했던 여타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면 관세를 인하할 것이다. 나아가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이 내년 11월 중간 선거에서 패배하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 또, 미국의 일방주의적 수입 규제가 미국 자동차 산업 국내 생산 차질을 유발해 코로나19와 유사한 상황을 재현해 소비자와 기업의 원성이 높아지면 미국의 통상정책은 변화할 수 있다.
미국은 자동차 부품 수요의 6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생산 기지를 경쟁적으로 멕시코와 캐나다로 이전했다. 그 결과, 멕시코와 캐나다로부터 부품 수입 비중이 50.7%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미국은 완성차 수입 물량과 부품 수입 금액을 제한하고 있는 NAFTA를 개정한 USMCA 규율에 따라 멕시코와 캐나다산 자동차에 탑재된 비미국산 부품 비중에만 25%의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멕시코와 캐나다로부터 수입되는 자동차의 20% 정도만 25%의 고관세가 부과될 예상이다.
우리 정부가 자동차산업 지원 방안을 발표했지만 이참에 국내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과 구조 고도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 속 국내 완성차 업체가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창업과 이 업종 기업의 자동차 사업 진입이 증가해 부품기업수만 2023년 1만5239개로 증가했다. 국내 1차 공급 업체가 691개로 감소한 가운데 외부감사 대상 공급업체 1485개, 10인 이상 공급업체 4272개를 뺀 나머지는 1만967개 업체는 고용이 10인 미만인 영세 기업이다.
우리나라보다 2.5배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미국 자동차 부품 업체수가 1만8176개로 추정되는 가운데 국내 부품업체 수가 너무 많아 그만큼 비효율이 큰 실정이다. 자동차 부품업체 사업 전환이 부진하고 한정된 지원 예산으로 국내 부품기업 모두를 지원하기는 어렵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자동차산업에 대한 미국의 통상압력과 관련해 지원 요청이 쇄도할 예상이다. 외부감사 대상 기업 중 좀비 기업 비중이 30%에 달하는 상황에서 재원 배분이 비효율적으로 흐르면 구조 개편과 구조 고도화는커녕 또다른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트럼프 파고를 피하더라도 중국 자동차기업과의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미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에 따라 아프리카까지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 시장에 진출해 있다. 자동차산업 이해관계자들의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자문위원 lyg8779@hanmail.net
〈필자〉이항구 위원은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서 자동차산업 연구를 담당했다. 2020년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 호서대 조교수, 자동차융합기술원장 등을 역임하고 올해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친환경차 보급 뿐만 아니라 기업간 협업법 제정과 상생 결제 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 국토교통부 자율주행자동차 융복합 미래포럼 위원, 중소벤처기업부 규제 특구 자문위원, 환경부 WTO 무역과 지속 가능 환경협의체(TESSD) 대응 TF 위원, 인베스트 코리아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