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AX2.0 시대, 핵심인재가 승부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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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홍진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

지난 1월 20일 세계를 놀라게 했던 딥시크 출현은 이제 여운이 가신 듯 보이지만, '딥시크 이펙트'는 수면 아래에서 진행형이다. 딥시크의 성공은 천문학적 자본과 대규모 인력이 아닌, 150여명 정예 인력이 이룬 알고리즘 혁신과 엔지니어링 최적화 결과였다.

인공지능(AI) 모델 크기 경쟁, 즉 스케일링 법칙을 극복하고 추론 성능에서 질적 혁신을 이뤄냈다. '제2의 딥시크'라 불린 마누스도 멀티 에이전트 아키텍처를 이용해 복잡한 현실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AI 에이전트를 선보였다.

이로써 빅테크 중심의 AI 승자 결정론이나 AI 성능 향상은 학습량과 컴퓨팅 자원 확대라는 한 가지 방법뿐이라는 통념이 깨졌다. 중국이 모방을 넘어 독자적 방식으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람, 핵심인재에 있었다.

◇AX2.0 시대 전략자산, 핵심인재

이제 AI 기술은 단순 생성과 추론 중심 AI 트랜스포메이션(AX) 1.0 시대에서 AX 2.0 시대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AX 2.0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AI 에이전트'와 현실 세계에서 물리적 작업까지 수행하는 '피지컬 AI'가 그 중심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국가 능력은 전적으로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AX 2.0의 AI는 증기와 전기에 버금가는 '공통기반기술'로서 새로운 생산성 혁명 핵심 수단이다.

AI는 소프트웨어(SW) 개발뿐 아니라 금융, 법률, 의료 등 가장 보수적인 서비스 분야까지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생산성 향상을 직접 시현해 주고 있다.

AI 활용으로 은행은 업무 프로세스 시간을 평균 30% 단축하고, 변호사 업무 효율은 약 2배 높아졌다. 제약회사는 신약개발 비용을 80% 절감하고, 의료 영상 진단 솔루션으로 암 발견율을 15%나 향상시켰다.

이같은 AX2.0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기술 전략, 인프라, 자금, 인재의 네 박자가 균형을 갖춰야 한다. 그 중에서도 핵심인재 확보가 그 시작점이다. AX2.0이 고도화될수록 문제 정의, 새로운 서비스나 시스템의 아키텍처링, 성능 최적화 등 각 분야에서 통찰력·창의력을 가진 핵심인재가 더욱 중요해진다. 최고의 핵심인재는 국가전략자산인 것이다.

◇기술패권 경쟁과 인재 전쟁

미국·중국 간 기술패권 경쟁은 AI, 휴머노이드 뿐만 아니라 6G, 양자컴퓨팅 등 첨단 기술 전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경쟁 핵심은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최고 인재를 누가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발표한 'AI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거대언어모델(LLM) 등 AI 성능에서 미국·중국 격차는 불과 1년 만에 9.3%에서 1.7%로 급격히 좁혀졌다.

2014년부터 10년간 중국의 생성형 AI 관련 특허 출원 규모는 미국의 6배에 달한다. 이런 중국의 약진은 세계 상위 AI 연구자의 47%에 달하는 인재 풀의 힘에 기반한 것이다. 이에 대응해 유럽도 325조 규모 '인베스트 AI 이니셔티브'를 계획하고, 일본도 65조 규모 'AI 칩 및 인프라 개발' 투자 확대와 핵심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국가전략기술 R&D 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AI 연구자는 2만1000여명으로 세계 9위에 불과하다. 중국 연구자 약 41만1000명, 미국 12만명과 비교하면 현저히 적은 수준이다.

전문인력 부족은 AI 산업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공급 부족을 넘어 AI인재가 한국을 떠나는 구조적 흐름이 고착화되는 것이다. 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1만명당 0.3명이 해외로 나가는 AI인재 유출국이다.

◇AI G3 견인 '촘촘한 K-AI 인재 스펙트럼' 구축해야

세계 AI 경쟁 판도를 뒤흔든 중국의 약진은 지난 20여 년간 집요하고 꾸준하게 추진해 온 인재양성 결과다. 중앙정부(고등교육기관 AI 혁신행동계획 등 최고급 인재양성)-지방정부(지역특화 프로그램)-기업(산학 연계 인재양성)이 상호 연계된 전방위 인재육성 체계를 통해 '엘리트 인재'와 '일반 전문가' 육성 투트랙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인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특히 경쟁 판도를 바꿀 핵심인재는 더욱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육성전략이 필요하다.

국가적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인재저변을 확충하고, 학생연구자가 신진연구자→중견연구자→리더(최고)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파격적인 육성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K-AI 인재 스펙트럼K-AI 인재 스펙트럼

◇인재저변 확충을 위한 'AI 중심대학'으로 전환

먼저 미래 한국을 먹여 살릴 상위 1% 최고 인재를 배출하려면 무엇보다 생태계가 튼튼하고 토양이 두터워야 한다.

종전 대학 교육을 통해 사회 전반에 SW확산에 기여했던 'SW중심대학'을 'AI중심대학'으로 확대·개편해야 한다. 전교생 AI 기초교육 강화, 전공지식과 AI역량을 동시에 갖춘 융합인재 양성, AI 심화 교육을 통해 학부부터 '고급 AI 전사'를 조기 발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와 함께, AI를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전문 교사 양성을 위해 'AI·SW중심 교원대학' 지정도 필요하다.

이렇게 기른 전문 인재를 높은 전문성·융합 능력을 갖춘 석박사급 핵심인재로 성장시키기 위해 AI, AI반도체, 융합보안 등 전략분야 특화대학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최상위권 학생의 대학원 유입을 위해 등록금 면제뿐 아니라 충분한 생활비 지급, 우수 학생은 병역 혜택 등 파격적 지원도 필요하다.

또 최고급 인재는 R&D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연구 역량을 갖추며 성장한다. 석박사 학생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대학 AI RC(리서치 센터)' 구축도 필요하다.

◇최고급 리더연구자 육성 위한 AI인재 성장 사다리 구축

최고급 인재 육성을 위해서는 신진연구자, 중견연구자, 리더연구자 각 단계별로 전략적 지원을 통해 끌어 올려야 한다. 먼저 연구 생애주기 중 가장 창의적이고 활발하게 연구를 수행하는 시기인 박사 후 연구자 등 '신진연구자' 정착을 위한 'AI스타펠로십지원' 등을 대폭 확대해 신진연구자가 독립적·창의적으로 연구를 마음껏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

'중견연구자' 도약을 위해서는 중장기 연구비전을 갖고 랩 단위 연구팀을 운영하며 도전적 연구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AI스타랩' 'AI융합랩' 등 연구몰입 기초 조직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소규모 연구실(팀)이 연구 역량을 축적해 독자적으로 연구그룹을 형성하고 '리더연구자'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수준 연구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리더연구자' 양성을 위해 중견.리더 연구자가 주도하는 대학 AI RC를 확대·대형화하고, '인공지능핵심원천기술개발' 등 AI, ICT 분야 주요 R&D 프로젝트와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또 싱가포르 사례처럼 부족한 인적자원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공동 연구도 중요하다. 각 국가별 연구강점을 고려해 전략 국가를 선정하고 연구거점과 협력파트너를 체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 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1% 최고 인재

실리콘밸리에서는 동료보다 10배 더 뛰어난 '10x 엔지니어' 등 리더 연구자 확보를 위해 100억원이 넘는 파격적 보상까지 제시하는 등 최고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연일 새로운 AI 모델과 서비스가 쏟아지는 격변의 시대,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다.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약계열 선호현상 속, 금년도 대학입시에서 만점을 받고도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에서 희망을 본다. 이들이 오픈 AI의 샘 올트먼, 딥시크의 량원평과 같이 국가 미래를 좌우할, 한국을 먹여 살릴 상위 1% 최고인재로 성장하기를 응원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한명 한명이 소중한 자산이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이들을 최고인재로 키워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홍진배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 jbhong09@iitp.kr

〈필자〉 1996년 38회 행정고시로 정보통신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영국 맨체스터대 기술경영학 박사로 30년 가까이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서 통신정책관,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 네트워크정책실장을 역임했다. 지난 해 2월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원장으로 부임, 정보통신기술(ICT) 연구개발(R&D)과 인재양성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2003년 대통령 표창, 2021년에는 대통령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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