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 〈221〉과학기술 대전환의 기로: 인재 유출을 막고 혁신을 살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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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김성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

최근 중국의 인공지능(AI) 딥시크(DeepSeek)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방대 출신의 무명 수학 천재가 극히 적은 투자로 개발한 AI라는 점에서 더욱 이례적이다. 중국은 이처럼 AI와 첨단 기술 분야에서 빠르게 부상하고 있으며, 그 배경에는 '천인계획(Thousand Talents Plan)'과 같은 공격적인 인재 유치 전략이 있다. 우리나라 석학들조차 정년퇴직 후 더 나은 연구 환경과 수 배에 달하는 연봉을 제시받고 중국의 유수 대학으로 스카우트되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한국은 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이 세계 2위에 달한다. 그러나 아직 노벨상 수상자가 없고, 매년 가을 노벨상 발표 시즌이 되면 국민적 실망과 자조가 반복된다. 현장 연구자들은 여전히 연구비 확보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과연 이처럼 많은 투자가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구조적 비효율이 존재하는 건 아닌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1960~1970년대, 국민소득이 100달러도 못 미치던 시절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이 설립됐고, 당시 연구자들은 대학교수들보다 2~3배 높은 연봉과 사택 등 복지 혜택을 받았다. 1990년대까지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기까지 과학기술은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고, 연구자는 자부심 있는 직업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기술계는 인재 부족과 인기 하락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우리가 점점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국민소득이 4만달러에 근접한 지금, 성장률은 정체돼 있고, 세계 각국은 기술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신기술은 산업과 경제를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지만, 우리는 과연 이 경쟁 속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과학이 혁신되면 경제가 성장한다. 과거 눈부신 압축성장을 지속해왔던 시절의 전략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우리의 과학기술 정책은 단기적 성과 중심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인재 양성과 창의적 연구 생태계 구축을 중심으로 재정립돼야 한다.

GDP 대비 높은 R&D 투자에도 성과가 제한적인 이유는 투자 효율성과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고, 특히 우수과학 인재 양성 전략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가 긴밀히 협력해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선진적인 교육 시스템과 연구환경을 갖추는 한편, 과학기술 중심의 외교정책을 통해 해외 우수 인재의 국내 유치를 촉진하고, 국내 연구자들의 국제 경쟁력을 체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이 조화를 이루도록 정책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일시적인 경제 효과를 위해 특정 분야에 과도하게 편중된 지원보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균형 있는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의 R&D 예산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연구개발 예산이 크게 삭감되면서 연구 인력의 대규모 이탈이 발생한 전례가 있다. 최근에도 R&D 예산이 갑자기 20% 가까이 삭감돼 연구 현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정책의 예측 불가능성은 청년 세대의 이공계 기피를 심화시킨다.

이제는 정부 R&D 예산의 범부처 통합 조정 기능을 실질화할 체계가 필요하다. 과학기술혁신본부의 기획·조정 기능 강화는 물론, '과학기술 부총리제'와 같은 제도 도입을 통해 정책의 연속성과 실행력을 확보해야 한다. 과학기술 부총리는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고, 중장기 전략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을 갖춰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 우수 인재의 지속적인 양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 없이는 과학기술 중심 국가로의 도약은 불가능하다. 지금이야말로 과학기술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결정적 시점이다.

김성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한국과학기술한림원 총괄부원장 sjkim@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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