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부조직 개편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개편 경험을 돌아보면 기대보다는 실망이 더 컸다. 미래 국가 운영의 방향성을 실질적인 거버넌스 설계로 구현해야 해지만, 기존 부처를 재편하거나 이름을 바꾸는 형식적 조정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변화는 일시적이었고,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정부조직 개편에서 다루어야 할, 다가오는 미래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명확하다.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과학기술혁신정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의 구축이 놓여 있다.
공교롭게 20여 년 전, 우리는 과학기술 부총리제를 도입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그 핵심은 분산된 R&D 예산과 정책을 조율해 제약을 극복하고, 미래의 성장 동력을 발굴하려는 데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시행착오들은 오늘날 우리가 풀어야 할 구조적 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부총리 직제를 두는 것만으로는 기대했던 조정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었다. 대통령실, 과학기술 자문 및 심의 기구, 그리고 R&D 예산과 정책기획 기능을 통합하는 상위 거버넌스 체계 없이 이루어진 조직 개편은 한계를 드러냈고, 결국 기대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우리는 과학기술혁신 거버넌스 체계의 근본적인 재구상이 필요하다. 그 핵심 과제는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과학기술혁신을 통합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정부 조직에 관한 것이다. 기존 부총리제의 권한만으로 우리가 기대했던 조정과 통합을 실현해 낼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 졌다. 부처 간 칸막이를 지금처럼 남겨둔 채로 실질적인 조정과 통합은 불가능하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책임부총리를 새롭게 둘 필요가 있다. 이 책임부총리는 과학기술 기반의 국가 중장기 미래 전략을 수립하고, 관련 부처의 정책을 조정하며, 국가 R&D 예산의 편성·배분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갖는 컨트롤타워가 되어야 한다.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책임부총리 산하로 개편해, 국가 R&D 예산의 기획·조정과 더불어 과학기술혁신정책의 수립과 실행을 핵심 기능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대통령실 내 과학기술 자문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대통령 과학자문관은 국가과학자(Chief Scientist)의 위상으로서, 대통령에게 과학기술 전반에 걸친 자문을 제공해야 한다. 물론 과학기술 및 혁신정책을 담당하는 비서관 체계를 두되, 본연의 역할은 국정 전반에 관한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과학적 통찰을 제공하는데 있어야 한다. 또한 각 부처별 과학자문관들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이를 통해 책임부총리와 국가과학자실의 역할은 명확히 구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내 자문회의 체계는 국가과학자가 맡아야 하고, 반면 심의회의 체계는 정책의 운영을 맡은 책임부총리가 주도해 운영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책임부총리 산하에 어떤 부처를 둘 것인지, 그 외 부처와의 조정 기제를 어떻게 구축할 지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 책임부총리 주재의 정례적인 관계부처 장관 회의, 부총리 조정 권한의 법제화, 예산 협의 기제 마련 등 입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이번 정부조직 개편은 단순히 기존 선례를 답습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라면 정부조직법 개정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지난 20년은 분명 헛된 시간은 아니었겠지만, 어느 정부도 혁신기반 성장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새로운 거버넌스 구상이 새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박재민 건국대 교수·ET대학포럼 좌장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