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써주는데 대학에서 아직도 글쓰기 교육을?[기고/이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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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전 인문대학장

이석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전 인문대학장
생성형 인공지능(AI) 물결이 사회 전반을 휘몰아치고 있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파고가 제일 높은 곳 중 하나가 아닐까. 글쓰기 교육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예년처럼 이번 학기도 철학개론을 개설했다. 통상 중간, 기말고사는 현장에서 직접 답안을 쓴다. 그러나 철학적 성장을 몇 개 문단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반대 입장을 비판하고 자신의 논변을 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기말 보고서도 쓰게 한다. 적어도 지난 학기까지는 그랬다. AI에 의지하지 말고 직접 쓰라고 당부하지만 큰 효력은 없다. AI의 글로 의심되는 과제가 많아졌다.

나 자신이 AI를 연구와 업무에 쓰는 현실에서 학생들에게 쓰지 말라는 당부가 설득력 있을까? AI 없이 살 수 없을 세대에게 멀리하라는 권고는 온당한가? 오히려 교육 속으로 포용하여 잘 활용하도록 도와야 할 것 아닌가?

이러한 고민 끝에 이번 학기 새로운 평가 방식을 도입했다. 새롭다고 하지만 사실 새롭지 않다. 보고서를 미리 쓰게 하고, 그 보고서로 20분씩 구술시험을 볼 예정이다. 보고서에서 옹호한 입장이 왜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지, 왜 그런 논거를 들었는지 직접 물어보려고 한다.

구술시험은 어떤 효력이 있을까? AI의 글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면 구술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최고 성적은 이해만으로는 부족하다. 글의 허점을 캐묻는 일이 구술시험의 핵심이기에 미리 그 논리를 따져보고 장단점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교수의 비판에 대응하기 어렵다. 때로는 글을 본인이 직접 수정, 보완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AI 초고는 학생 자신의 글이 된다. AI와 함께하는 글쓰기 훈련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여야 이러한 구술시험이 효력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지난주 강의에서 가치가 주관적인지 객관적인지에 대해 다뤘다. 철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이견이 있는 주제이다. 만약 정답이 있다면 이 주제로 구술고사를 볼 의미가 없다. AI의 도움을 받아 학생이 제출한 글은 정답을 빈틈없이 담았을 것이다. 정답을 어떻게 비판하겠는가?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기원전 5세기 플라톤이 처음 제기한 이 질문을 철학자들은 아직도 다투고 있다. 대부분의 철학 문제는 이렇게 엎치락뒤치락 논쟁을 허락한다. 그럼 우리는 궁금하다. 정답도 없는데 무슨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가? 시대가 바뀌면서 지식도 늘어나고 사람도 달라진다. 새로운 과학, 새로운 신념으로 달라진 우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설득할 때 우리는 주목한다. 정답을 담아서가 아니다. 새로운 지식으로 배가된 설득력을 갖춘 창의적 논리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답이 없는 문제를 왜 고민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가만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을 보라. 어디 손쉽게 정해진 답이 있는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자신의 입장이 그래도 조금 나은 것임을 성심껏 설득하며 구성원과 함께 가려고 하는 노력이 공동체의 삶 아닌가? 이러한 설득력과 논리력을 표현하는 방편이 글쓰기다. 그렇다면 인간의 근원적인 고민들이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 한 글쓰기는 미래 세대에게도 필수적인 능력이다. 고민이 넘쳐나는 AI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다만 이제는 생성형 AI와 함께 좋은 글쓰기를 도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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