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학교에서의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디지털 디톡스’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이 청소년들의 집중력과 학습 능력 저하, 그리고 독서량 감소로 이어진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많은 연구가 과도한 영상 매체와 소셜미디어 사용이 깊이 있는 사고와 문해력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디지털 도구의 도입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AI 등 다양한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개인의 ‘증강 능력(augmented ability)’ 계발이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는 지금, 디지털 도구 활용의 기회와 경험을 학교교육에서도 소홀히 할 순 없는 것이다.
이 딜레마적 상황에서 고 이어령 선생이 제시한 ‘디지로그(DigiLog·디지털+아날로그)’ 개념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는 바로 이러한 디지로그 세상이며, 교육 역시 이 방향으로의 변화를 차근하게 준비해 나가야 한다.디지로그 세상을 살아가려면 디지털과 아날로그 역량이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선순위가 있다. 바로 탄탄한 아날로그 역량을 바탕으로 디지털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어린 시기에 아날로그 학습과 경험을 좀 더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육부가 초등학교 저학년에 AI 교과서 도입을 기획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디지로그 시대를 위한 미래 역량을 키우려면 학교 교육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첫 번째 원칙은 아날로그 핵심 역량인 문해력을 어린 시기부터 튼튼히 다지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정의한 것처럼 다양한 콘텐츠를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하고, 활용할 수 있는 ‘생각의 힘’으로서의 문해력이 교육의 중심이 돼야 한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시작을 선언하면서 비판적 사고, 창의성과 함께 문해력을 가장 먼저 강조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둘째, 문해력이라는 생각의 힘을 바탕으로 학생들이 디지털 도구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생각하는 인간인 호모사피엔스를 넘어,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호모파베르이다. 이를 위해서는 AI 등 디지털 도구의 활용이 단순한 개인 학습 지원을 넘어서야 한다. 학생들 간 협업과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시스템으로 발전해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기획, 토론, 공동 작업은 미래 사회의 핵심 역량인 소통, 협력, 문제 해결력을 키우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AI 기반 교육시스템은 종이책의 단순한 디지털화를 넘어서야 한다. 개인 맞춤형 학습 지원을 넘어 학생들의 다양한 공동 작업을 돕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 교육은 지식 소비가 아닌,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경험과 능력을 키우는 혁신적 시스템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