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원재]“선관위는 가족회사” “친인척 채용이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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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만한 사람을 뽑기 위해 친인척을 채용하는 전통이 있다.” 감사원 담당자가 특혜 채용의 이유를 묻자 선거관리위원회 간부가 한 말이라고 한다. 감사원은 2013년부터 10년간 진행된 전국 선관위 경력 채용 사례를 조사해 878건의 규정 및 절차 위반을 확인하고 32명에 대해 중징계 등을 요구했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선관위에서는 오랜 기간 친인척 특혜 채용과 청탁이 공공연하게 이뤄졌는데, 직원들끼리 “선관위는 가족회사”라는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 감사는 2022, 2023년 김세환 박찬진 전 사무총장과 송봉섭 전 사무차장 등 선관위 최고위직 자녀의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지며 이뤄졌다. 사무총장과 사무차장은 대법관이 겸직하는 위원장을 보좌하며 조직을 이끄는 사실상의 1, 2인자다. 감사 결과 김 전 총장 아들을 경력 채용할 때 규정을 어기고 면접관 전원이 김 전 총장과 같이 일했던 사람으로 구성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중 한 명은 김 전 총장 아들 결혼식 때 축의금을 접수했던 직원이었다. 송 전 차장은 실무자에게 전화해 “내 딸을 추천하면 안 되겠냐”고 노골적으로 청탁했다. 이렇게 채용된 최고위직 자녀는 내부에서 ‘세자’로 불리며 근무할 때도 각종 특혜를 받았다고 한다.

▷채용 특혜는 최고위층 자녀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역 선관위 과장급 자녀까지 특혜를 받았는데, 감사에선 최소 10명이 특혜 채용되고 그만큼 억울한 탈락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무자들은 면접관에게 “평가표에서 점수는 비우고 사인만 하라”고 한 뒤 나중에 점수를 채웠고, “점수를 연필로 쓰라”고 한 뒤 지우고 새로 적어넣기도 했다. 특혜 채용에 대한 내부 고발도 있었지만 묵살됐다. 오히려 논란이 되자 특혜 채용을 감추기 위해 국회에 “친인척 채용 현황 자료가 없다”며 허위 답변했고, 관련 자료를 파기하며 은폐를 시도했다는 게 감사원 지적이다.

▷이번 감사에선 내부에 만연한 근무 태만 사례도 적발됐다. 강원선관위 과장은 8년 동안 124회 출국해 817일 동안 해외에 체류하며 무단결근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정상 근무한 것처럼 위장해 챙긴 급여만 3800만 원가량이다. 무단결근과 허위 병가를 셀프 결재하며 2019년에만 131일 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온 국장도 있었다.

▷선관위는 그동안 ‘헌법상 독립기관’임을 내세우며 감사원 감사를 거부해 왔다. 헌법재판소 역시 27일 “선관위는 감사원 직무감찰 대상이 아니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헌재는 “(이번 결정이) 부패 행위의 성역을 인정하는 것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며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선관위가 감사원 감사 대상이 아닐 수는 있지만 자정 노력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되찾지 못하면 존립의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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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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