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구치소는 대통령이 가도 배울 게 많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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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감옥은 작지만 큰 대학”이라고 했다. 내란 음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옥살이 6년간 하루 10시간씩 독서하고, 그리운 가족과 편지 주고받고, 화단을 가꾸며 “여기 오지 않았더라면 깨칠 수 없는 진리를 깨쳤다”고 썼다. 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예찬일 뿐 감옥은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최고 권력을 쥐어본 이들에겐 더욱 그러할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 수감 생활을 한 이는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이명박, 윤석열 대통령. 속칭 ‘범털’들은 입소 초기엔 음식 때문에 고생한다. 박 전 대통령은 구치소 음식이 짜서 맨밥만 먹다가 나중에는 컵라면을 사서 물을 많이 부어 먹었다고 한다. 전, 노 두 전직 대통령이 안양교도소와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가 12·12와 5·18 사건 등으로 같은 법정에 출석해 처음 나눈 대화는 유명하다. “자네 구치소에선 계란프라이 주나?” “안 준다.” “우리도 안 줘.”

▷수감 생활 중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도 많다. 건강을 핑계로 쉽게 탈옥한다는 비난이 제기되지만 고령인 탓이 크다. 구치소에선 튼튼한 장정도 1년 지나면 몸이 망가지기 십상이라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구속된 지 4개월 만에 수면 무호흡과 당뇨로 입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건강이 나빠져 형 집행정지를 두 차례 신청했지만 검찰이 모두 불허했다.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이던 시절이다. 결국 법무부 결정으로 외부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된 윤 대통령은 “잠을 많이 자니 더 건강해졌다” “구치소는 대통령이 가도 배울 게 많은 곳이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한밤중 계엄 선포로 밤잠 설쳐가며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이 듣기엔 불편한 말이다. 윤 대통령은 응원해준 국민들에게 감사하고, 내란 혐의로 구속된 계엄군의 석방을 기도한다고 했다. 좌우 할 것 없이 어려움과 분열을 겪는 모든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화합을 당부했어야 하지 않나. 배울 게 많은 곳에서 무엇을 배웠다는 걸까.

▷윤 대통령은 그동안 구속 기소했던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났다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언급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지휘하며 구속시킨 이들로 양 전 대법원장은 1심에서 무죄, 임 전 차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만 콕 집어 지목하자 ‘보수층 외연 확장을 노린 발언’ ‘재판을 앞두고 법원에 선처를 호소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수감 생활은 52일, 이 중 8일은 헌법재판소, 하루는 내란죄 법정에 출석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배움을 얻기엔 갇혀 지낸 시간이 길지 않았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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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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