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완준]아무도 모른 좌표 실수, 오폭 뒤늦게 안 수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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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전투기 오폭 사고는 드물다. 실전용 폭탄을 잘못 떨어뜨린 적은 아예 없었다. 2004년 F-5B 전투기가 충남 보령시 한 주차장에 폭탄을 잘못 투하해 차량이 훼손됐지만 폭발하지 않는 연습용 폭탄이었다. 이듬해엔 F-16 전투기가 전북 농가 비닐하우스에 연습탄 2발을 떨어뜨렸는데 인명 피해는 없었다. 6일 발생한 F-16 전투기 오폭 사고가 충격을 주는 건 실전용 폭탄이 8발이나, 그것도 주민 700여 명이 사는 경기 포천시 한 마을을 덮쳤기 때문이다.

▷폭탄이 떨어진 시각은 오전 10시 4분이었다. 청명한 하늘에서 느닷없이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는 건 전시(戰時)가 아니고선 상상하기 어렵다. 수많은 주민들이 혼비백산하며 “전쟁 난 줄 알았다”고 울먹였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마을 곳곳에 폭발 굉음이 들리고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를 때 이들이 느꼈을 공포는 형언하기 힘들 것이다. 한 여성은 어찌나 놀랐는지 남편에게 “여보, 어떻게 해…” 하며 말을 잇지 못하다 “우리 집이 날아갔어”라고 힘겹게 전하는 통화 내용이 언론에 공개됐다.

▷민가에 떨어진 MK-82 폭탄은 교량과 건물을 파괴하기 위한 대량 투하용으로 쓰인다. 폭발 때 직경 8m, 깊이 2.4m 구덩이를 만드는 건 물론 살상 반경이 축구장 1개 면적에 달한다. 낙탄 위치가 달랐다면 돌이킬 수 없는 대참사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 폭탄은 유도 기능이 없기 때문에 전투기에 표적 좌표를 정확히 입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좌표 숫자 1개라도 틀리면 몇 km씩 오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조종사가 출격에 앞서 바로 그 좌표 15개 숫자 중 위도 숫자 1개를 잘못 입력한 탓에 훈련장에서 8km 떨어진 민가가 오폭당했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조종사는 좌표를 잘못 입력한 뒤 전투기 탑승 직후 지상에서 한 번, 공중에서 투하 직전까지 두 번 더 표적을 검증해 오류를 바로잡아야 했지만 세 번 기회 모두 지나쳤다. 그런데 애초 조종사만 좌표를 확인한다고 한다. 이번에도 혼자 타는 K-16 조종사 본인 외에 아무도 좌표를 검증하지 않았다. 한 치 오차도 없어야 할 살상무기를 다루는 매뉴얼이 이리 허술하리라 예상한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군 수뇌부는 사고 30분이 지나도록 오폭 사실조차 몰랐다. 김명수 합참의장에게는 사고 36분 뒤,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인 김선호 차관에게는 39분 뒤에야 보고됐다. 원래 폭탄을 투하했어야 할 포천 훈련장에선 사고 뒤에도 다른 훈련이 계속됐고 훈련을 참관한 김 의장과 한미연합군사령관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장병들과 대화도 나눴다고 한다. 합참이 사고를 파악한 시점 자체가 오폭 20분 뒤였다. 사고 1분 만에 구조에 착수한 소방 당국보다 19분 늦었다. 전쟁 때도 이렇게 한심하게 대처할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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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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