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맥락을 알 수 없으니 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기에 명 씨가 감사하다 했는지 분명치 않았다. 공천 권한을 쥔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약속이지 않았겠느냐는 짐작이 가능할 뿐이었다. 당시 국민의힘 재·보선 공천관리위원장은 윤상현 의원이었다. 의혹이 커지자 육성 공개 일주일 만인 지난해 11월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저는 그 당시 공관위원장이 정진석 (현) 비서실장인 줄 알았다. 누구를 공천 주라 이런 이야기는 해본 적 없다”며 정면으로 부인했다.
▷25일 한 시사주간지가 공개한 윤 대통령과 명 씨 간 전체 통화 내용은 “정진석” 운운했던 해명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2분 30초간 이뤄진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김영선이 해줘라”에 이어 “내가 저기다 얘기했잖아. 상현이한테, 윤상현이한테도 하고”라고 말한다. 명 씨가 다시 공천을 부탁하자 윤 대통령은 “알았어요. 내가 하여튼 저, 상현이한테 내가 한 번 더 얘기할게. 걔가 공관위원장이니까”라고 했다. “은혜 잊지 않겠다”는 명 씨의 인사는 바로 이 발언 뒤에 이어진다. 공관위원장인지도 몰랐다던 윤 의원을 공관위원장이라 부르고 공천을 얘기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하루 앞서 공개된 김건희 여사와 명 씨 간 통화 육성에도 관련 정황이 보인다. 윤 대통령과 명 씨의 통화 40여 분 뒤 김 여사가 명 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뤄진 통화다. 통화 초반 김 여사 전화기 옆에서 윤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윤상현이한테…”라고 하는 말이 들린다. 김 여사는 “응, 응”이라고 답한 뒤 명 씨에게 “당선인이 지금 전화를 했는데 하여튼 당선인 이름 팔지 말고 그냥 밀으라고(밀라고) 했어요”라고 했다.▷이는 공개 석상에서 윤 대통령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검찰이 포렌식을 끝낸 명 씨 ‘황금폰’ 3대와 USB엔 통화 파일은 물론 저장된 문자메시지 파일이 15만 개가 넘는다.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공표 여론조사 무상 제공 의혹뿐 아니라 김 여사의 지난해 총선 공천 개입 의혹까지 실체 여부에 따라 하나하나 다 정국을 흔들 만한 내용들이다. 앞으로 윤 대통령이 묻어둔 진실들이 얼마나 더 드러날지 궁금해지는 이유다.
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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