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기부 받아 ‘상품권 깡’, 아파트 ‘우회 소유’ 도운 공익법인들

3 days ago 3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한 의료 관련 공익법인 이사장은 지난해 백화점 상품권 수십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그러곤 상품권을 되팔아 현금으로 바꾼 뒤 자기 계좌로 입금했다. 기부받은 돈으로 ‘상품권 깡’을 한 것인데 거리낄 게 없었는지 상품권을 살 때 법인카드로 긁었다. 최근 국세청이 확보한 그의 법카 결제 내역에는 귀금속도 다수 있었다. 함께 적발된 다른 공익재단은 기부금으로 고가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샀다. 임대 수익금으로 공익 활동을 했다면 문제가 없지만 재단은 고액 기부자의 가족들에게 이 아파트를 공짜로 내줬다. 기부자가 재단을 우회해 세금을 안 내고 아파트를 사실상 소유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다.

▷공익법인은 공익 목적으로 출연한 재산에 대해 증여세 면제 등 각종 혜택을 받는다. 그 대신 기부금이나 출연금을 공적 용도로 써야 한다. 복지, 의료, 교육 등 분야에 더 많이 기부가 이뤄지도록 도입된 제도지만 공익으로 위장한 ‘사익법인’이 적지 않다. 지난해 한 공익재단 대표가 기부금으로 수억 원대 골프장 회원권을 사들여 사적으로 쓰다가 걸린 일이 있었다. 수백억 원대 토지를 출연받아 놓고 기부자가 쓸 개인 건물을 짓거나, 재단 자금으로 기부자 손녀 유학비를 대는 등 부당 거래가 이뤄진 사례도 있다.

▷일부 자산가들은 세금 회피나 재산 보호를 위해 공익법인을 이용하기도 한다. 공익법인에 출연한 재산은 상속세나 증여세를 물지 않고, 채권자에게 압류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재단 명의로 고가 아파트를 사서 자녀에게 제공하거나 재단 돈으로 가족에게 허위 급여를 지급하는 등 재산을 우회시키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게다가 공익을 중시한다는 이미지까지 얻을 수 있어 여러모로 남는 장사다.

▷이 때문에 외부 감시가 철저해야 하지만 국세청에 공시된 공익법인은 10곳 중 3곳꼴이다. 엉터리 공시도 많다. 국세청이 지도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곤 해도 총 4만 곳에 달하는 공익법인을 꼼꼼히 살피긴 쉽지 않다. 출연자와 특수관계에 있는 사람이 이사장 등 임원진을 맡아 재단 운영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아 내부 감시에도 한계가 있다.

▷연말연시가 되면 노점상이나 분식집을 해온 어르신이 평생 모은 돈을 장학재단 등 공익법인에 쾌척했다는 미담을 자주 접하게 된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준 기부자들에게 일부 공익재단의 부정 행태는 큰 상처를 안기는 배신 행위다. 공익법인이 신뢰받지 못하면 설립 목적에 맞게 묵묵히 공익 활동을 해온 다른 재단들까지 의심받게 된다. 또 사회 전반의 기부 의욕이 꺾이고, 어렵게 일궈온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자산가들도 망설일 수 있다. 무엇보다 공익재단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기회의 문이 더 좁아지는 게 가장 뼈아픈 결과일 것이다.

횡설수설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머니 컨설팅

    머니 컨설팅

  • 고양이 눈

    고양이 눈

  • 광화문에서

    광화문에서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