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한동안 글로벌 자금은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미국 증시, 가상자산, 달러 등이 일제히 치솟았다. 감세와 규제 완화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미국의 번영’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취임 후 1년 동안 S&P500지수가 24% 올랐던 트럼프 1기 때의 경험도 생생했다. 관세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1기 때처럼 협상 카드로 활용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블러핑이 아니라 진짜였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상대국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상처를 주고 있다. 관세 부과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이 거세져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 위험을 키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부과가 미국 기업과 일자리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미국 기업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미국 자동차 업체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는 “관세는 미국 자동차 산업에 전례 없는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했다.
▷미국 관세 공격의 주요 표적인 중국은 정작 태연한 모습이다. 올해 들어 5%가량 하락한 미국 나스닥 지수와 달리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홍콩 항셍테크 지수는 30% 가까이 올랐다. 미국 빅테크에 대한 관심이 주춤해진 대신 인공지능(AI) 딥시크 등을 앞세운 ‘레드 테크 M7’이나 ‘테리픽 10’ 등 중국 기술주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중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촨젠궈(川建國)’ 동지라고 부르며 환호할 정도다. 트럼프(川普·촨푸)가 중국을 때리면서 오히려 제2의 건국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끊임없이 관세 예고와 수정 조치가 계속되면서 미 증시는 극도의 피로감에 싸여 있다. 투자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게 불확실성인데, 관세전쟁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관세는 전쟁 행위”라며 “시간이 가면 관세는 상품에 매기는 세금이 된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적을 겨냥하는 사진을 둥근 전봇대에 말아 붙이면 총부리가 내 등을 향한다는 반전광고처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오히려 미국 경제를 되치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