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지난주 한 일 5가지 보고해. 답장 안 하면 사직 간주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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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한 일을 5가지로 정리해서 보내라.” 지난 주말 휴식을 취하던 230만 미국 연방정부 직원들은 갑자기 이런 내용의 e메일을 받고 술렁였다. 일부 공무원들은 정부를 사칭한 ‘피싱 메일’로 오해했다. 메일의 발신처는 연방정부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인사관리처, 배후에는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 겸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있었다. 머스크는 “답장하지 않으면 사직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메일을 보낸 이유에 대해 머스크는 진짜 근무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수준의 ‘기본적인 맥박 검사’라고 했다. “공무원 상당수는 일을 너무 안 해서 e메일조차 확인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소한의 성실성까지 의심받은 직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연방수사국(FBI), 국가정보국(DNI), 국방부, 국무부 등 기밀을 다루는 부서는 회신을 거부했다. 공무원 노조인 미국공무원연맹(AFGE) 등은 위법한 지시라며 인사관리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천재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머스크를 추켜세웠다. 더 공격적으로 하라고 주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애니메이션 캐릭터 ‘스펀지밥’을 활용한 풍자 게시물을 올렸다. 캐릭터들에게 지난주에 한 일 5가지를 적어보라 한 것인데 내용은 이렇다. ‘트럼프와 일론 때문에 울었다’ ‘사무실에 간신히 한 번 갔다’ ‘e메일 몇 개 읽었다’…. 많은 공무원들이 사무실에 가서 머스크가 보낸 e메일을 읽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비꼰 것이다.

▷정부 효율화와 예산 절감을 명분으로 추진하는 연방정부 개혁은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의 합작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은 관료들에 대한 불만이 컸고, 머스크는 트위터(현 X)를 인수하며 직원 80%를 잘라냈던 경험이 있다. 400여 개 연방기구를 4분의 1로 줄이고, 연방정부 예산의 약 30%인 2조 달러를 감축하는 게 목표다. 이미 7만5000명의 자진 퇴사를 받아냈고, 근무 기간 1년 미만의 수습 직원 22만 명에 대한 해고 조치에 들어갔다.

▷머스크는 공화당 정치 행사장에서 전기톱을 치켜들고 “관료주의를 썰어버리겠다”고 외쳤다. 이 같은 머스크식 개혁에 대해 공공영역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핵무기 관리·감독 기관 직원들을 해고했다가 뒤늦게 필수 인력인 것을 알고 부랴부랴 취소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공직사회의 비대화와 비효율, 복지부동으로 개혁이 시급한 한국으로선 미국의 단호한 결단이 부럽기도 하다. 남들은 개혁하겠다고 전기톱까지 휘두르는데 우리는 여태 커터칼 한번 제대로 쥐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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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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