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한국 기업들을 홍보에 동원한 것은 관세가 미국 경제와 소비자들에게 타격을 줄 것이란 비판에 반박하기 위해서다. “관세가 미국 내 생산을 늘리고 더 많은 일자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압박작전이기도 하다. 2017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은 ‘삼성이 미국에 가전공장을 세울 것’이라는 미국 현지 보도가 나오자 즉각 트위터에 “생큐 삼성”이라고 올렸다. 투자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결국 4개월 뒤 삼성전자는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철강 관세 폭풍에 국내 철강업계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가뜩이나 건설 경기 침체와 중국산 철강재의 저가 공세로 실적이 부진한 때여서 충격이 더 크다. 지금까진 한국산 철강 제품이 미국산보다 20%가량 저렴했는데, 관세가 부과되면 오히려 더 비싸져 가격경쟁력을 잃게 된다. 철강사들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현지 투자를 고민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10조 원가량을 투자해 미국 남부에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하는 제철소를 지을 예정이다. 포스코 역시 현지 합작 법인 설립, 제철소 인수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무관세 효과만 노리고 미국 내에 제철소를 세우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 수조 원의 막대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것부터 부담이다. 기업들이 국내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면 국내 생산이 감소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기껏 현지 생산을 늘려도 US스틸이 미국 정부의 지원과 일본의 투자에 힘입어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확대하면 미국에서 한국산 철강의 입지는 더 좁아진다.▷관세 폭풍이 거세지만 한국은 이미 슬기롭게 극복해 본 경험이 있다. 트럼프 1기 당시 기민한 외교전을 통해 철강 수입 쿼터제를 수용하는 대신 무관세 혜택을 얻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 한국산 세탁기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것을 성공 사례로 들고 있지만, 사실 최후의 승자는 현지 생산을 늘리고 품질로 미국 소비자를 사로잡은 한국 가전이었다. 이번 미국의 공세에도 움츠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여전히 틈새는 있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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