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승련]젤렌스키는 빠진 트럼프-푸틴의 종전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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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발발 3년을 앞두고 막 출범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협상이 묘한 구도로 흐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2일 전화 정상회담을 갖고 “종전협상 즉각 개시”에 합의했다. 18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양국 협상단이 처음 마주 앉았다. 하지만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는 배제됐다. “우크라이나와 협상하지 않겠다”는 푸틴의 말을 트럼프가 일단 들어준 결과다. 핵무장 강대국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는 어쩌면 앞으로 더 가혹한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평화도 돈으로 환산한다. 우크라이나에 종전 후 재건투자기금으로 5000억 달러, 우리 돈 720조 원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통상, 전쟁에서 진 나라는 배상금을 문다.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도 배상금을 물었는데, 가혹한 배상액 때문에 나치당의 등장에 빌미를 줄 정도였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침략당한 당사국인데 막대한 돈을 요구받고 있다. 달러가 없으니 흑연, 리튬 등 희토류와 석유를 현물로 내거나 항만 이용권을 내줘야 할 판이다.

▷트럼프 정부가 쓴 협정서 초안에는 미국이 자원 채굴에 따른 수익금 50%를 갖도록 돼 있다. 조 바이든 정부가 5차례에 걸쳐 부담한 전쟁지원금은 약 250조 원 규모다. 일부는 무상 원조였지만, 상당액은 미국의 ‘무기대여법’에 따른 무기 공여로 훗날 우크라이나가 갚아야 하는 것이었다. 트럼프가 “왜 우리 도로를 지을 돈을 유럽에 퍼붓냐”고 말했지만, 전액 다 무상 지원은 아니었던 것이다. 요즘 트럼프 내각 장관들은 “우크라이나 희토류의 50%를 미국에 준다면 미군이 장기 주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돈이 된다면, 트럼프는 고립주의적 정책도 언제든 바꿀 것 같다.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건 나토 가입을 통한 안전보장 확보와 실지(失地) 회복이다. 그러나 둘 다 쉽지 않은 목표다. 나토는 한 가입국이 군사 공격을 받으면 모든 회원국이 함께 대응하는 만큼 우크라이나로선 이만한 안전보장책이 없다. 하지만 러시아로선 서쪽 국경에 접한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일원이 되는 것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는 2014년에 점령당한 크림반도와 2022년 이후 뺏긴 돈바스 지역을 돌려받기를 바라고 있지만, “원래 우리 땅”이라며 전쟁을 시작한 푸틴에게 돌려받는 일은 쉽지 않다.

▷유럽 7개국 정상이 17일 프랑스 파리에 긴급히 모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종전 이후에도 미국이 아닌 유럽만의 평화유지군을 우크라이나에 두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국내 사정이 제각각 달라 성사 여부는 알 수 없다. 결국 3년을 돌이켜 보면 힘없는 우크라이나만 짓밟히고, 배제됐다. 트럼프가 내세운 ‘취임 직후 종전’은 기대가 컸지만, 미국의 이익보다 약소국의 자주권을 더 챙겨줄 것이란 기대가 너무 순진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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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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