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평화도 돈으로 환산한다. 우크라이나에 종전 후 재건투자기금으로 5000억 달러, 우리 돈 720조 원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통상, 전쟁에서 진 나라는 배상금을 문다.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도 배상금을 물었는데, 가혹한 배상액 때문에 나치당의 등장에 빌미를 줄 정도였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침략당한 당사국인데 막대한 돈을 요구받고 있다. 달러가 없으니 흑연, 리튬 등 희토류와 석유를 현물로 내거나 항만 이용권을 내줘야 할 판이다.
▷트럼프 정부가 쓴 협정서 초안에는 미국이 자원 채굴에 따른 수익금 50%를 갖도록 돼 있다. 조 바이든 정부가 5차례에 걸쳐 부담한 전쟁지원금은 약 250조 원 규모다. 일부는 무상 원조였지만, 상당액은 미국의 ‘무기대여법’에 따른 무기 공여로 훗날 우크라이나가 갚아야 하는 것이었다. 트럼프가 “왜 우리 도로를 지을 돈을 유럽에 퍼붓냐”고 말했지만, 전액 다 무상 지원은 아니었던 것이다. 요즘 트럼프 내각 장관들은 “우크라이나 희토류의 50%를 미국에 준다면 미군이 장기 주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돈이 된다면, 트럼프는 고립주의적 정책도 언제든 바꿀 것 같다.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건 나토 가입을 통한 안전보장 확보와 실지(失地) 회복이다. 그러나 둘 다 쉽지 않은 목표다. 나토는 한 가입국이 군사 공격을 받으면 모든 회원국이 함께 대응하는 만큼 우크라이나로선 이만한 안전보장책이 없다. 하지만 러시아로선 서쪽 국경에 접한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일원이 되는 것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또 우크라이나는 2014년에 점령당한 크림반도와 2022년 이후 뺏긴 돈바스 지역을 돌려받기를 바라고 있지만, “원래 우리 땅”이라며 전쟁을 시작한 푸틴에게 돌려받는 일은 쉽지 않다.▷유럽 7개국 정상이 17일 프랑스 파리에 긴급히 모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종전 이후에도 미국이 아닌 유럽만의 평화유지군을 우크라이나에 두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국내 사정이 제각각 달라 성사 여부는 알 수 없다. 결국 3년을 돌이켜 보면 힘없는 우크라이나만 짓밟히고, 배제됐다. 트럼프가 내세운 ‘취임 직후 종전’은 기대가 컸지만, 미국의 이익보다 약소국의 자주권을 더 챙겨줄 것이란 기대가 너무 순진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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