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K 롤링 ‘해리포터’ 시리즈 중
‘호빗’과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또 다른 판타지 작품인 ‘해리포터’ 시리즈와 자주 비교된다. 독창성이나 작품성에 대해 논쟁이 많지만 내가 느끼기에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세계관의 견고함에 있다.
반지의 제왕 세계관은 완결적이다. 종족을 넘어선 우정을 그려내는 한편 그 이면에는 순혈로 대표되며 깨뜨릴 수 없는 계급이 존재한다. 어느 누구도 순수 혈통의 권위를 의심하지 않는다. 반면 해리포터의 세계관은 역동적이다. 권력을 가진 순혈 가문에 입 닥치라며 소리 지르기도 하고, 태생부터 노예인 종족은 없다며 집요정 해방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관습에 문제를 제기하고 부숴 나가는 해리포터 세계관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 분위기를 환기하기도 한다. “입 닥쳐, 말포이”가 해리포터를 상징하는 밈이 될 수 있었던 건, 이 대사가 주는 통쾌함뿐만 아니라 언제든 고쳐 나갈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었을까.영화 호빗의 마지막 편에서는 여러 종족들의 화해와 단결로 세계의 정상성을 수호해 낸다. 주인공 빌보는 호빗들의 마을로 돌아가 원래의 안온한 삶을 살아가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모험을 함께했던 마법사 간달프가 찾아오자 한걸음에 달려 나간다. 그 모습에서 견고한 정상성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빌보의 갈망이 묻어 나온 것 같아 내심 반가웠다. 어쩌면 그가 오랜 시간 써 내려갔던 회고록은 ‘입 닥치고 내 말을 좀 들어 달라’며 꽉 막힌 세계관에 고하는 선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박진호 소설가·2025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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