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의 눈에 비친 비상계엄 3개월
윤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이 한창이던 지난달 초 그는 다시 연락을 해왔다. 한국 언론을 아무리 봐도 계엄의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내가 놓치고 있는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주장하는 ‘계몽령’이란 표현을 영어로 어떻게 옮겨야 하느냐고도 물었다. 나름대로 설명을 해줬지만 그는 전쟁 중인 국가에서나 하는 ‘계엄’이 ‘계몽’과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계엄의 충격이 잦아든 뒤부터 해외 언론은 보도의 초점을 실체 규명에 맞췄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도박”(BBC)임에도 윤 대통령에게 어떤 목적과 계획이 있었는지를 궁금해했다.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면서도 뚜렷한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 특히 주목을 받았는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1년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1·6 의사당 폭동을 선동한 것과 윤 대통령을 비교하는 보도(뉴욕타임스 등)가 이어졌다. 윤 대통령이 반국가세력 척결을 주장한 것에 대해 ‘반국가세력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는 지적(교도통신)도 나왔다.한동안 간헐적으로 나오던 외신 보도는 윤 대통령 체포를 두고 벌어진 극한 대치, 서울서부지법 난동, 양분된 탄핵 찬반 시위를 계기로 다시 불이 붙었다. 해외 방송사들은 코로나19 때 한국 현지를 연결해 선도적인 방역 모델을 소개하곤 했는데 이번엔 부끄러운 한국 정치의 실상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외신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인정하면서도 정파 간 대립이 계엄 사태로 더 극단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의 한 일간지 특파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만 해도 질서 있게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 이번엔 진보 보수의 접점이 없고 갈등이 너무 과격해 과연 봉합이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계엄 사태 석 달이 된 요즘 해외 언론의 관심은 ‘계엄 이후’로 옮겨가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이후 대선이 치러지면 리더십의 공백은 채워지겠지만 깊이 팬 분열의 골이 메워질지에 대해선 의문을 표하고 있다. 지금처럼 여론이 양극단으로 갈리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정파적 색채가 강해질 가능성이 높고,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지도자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어려워 외교적 경제적 손실이 클 것이란 시각이 많다. 한 한국계 미국인 기자는 최근 통화에서 “그동안 숱한 고비를 헤쳐온 한국이 이젠 미래가 불확실한 나라가 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권력 공백 채워져도 분열 메워질지 걱정 요즘 한국 주재 해외 특파원들 사이에선 “본사에 위험수당을 신청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계엄 선포로 군인들이 동원되고 법원에 난동이 벌어지는 나라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외국 기자들은 12·3 계엄선포문에서 언론·출판이 제한된다는 내용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 그런 불안감 때문인지 이번 칼럼을 위해 연락했던 외국 기자들 대부분이 이름과 언론사를 익명으로 써달라고 했다. 외신을 통해 국제사회에 퍼지는 ‘불안한 한국’의 이미지는 계엄 사태가 끝난 뒤에도 오래 남게 될 것이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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