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아주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심리적인 이유로 만성적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에는 약물 효과가 제한적이다. 여러 종류의 항우울제를 충분한 기간 동안 사용했는데도 반응하지 않는 치료저항성 우울증도 있다.
항우울제 효과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이는 논문도 있다. 대표적으로 심리학 박사 어빙 커시가 이런 관점을 이끌어 왔다. 그는 대부분의 항우울제는 화학적 작용보다는 환자의 기대감과 플라세보(위약) 효과에 기인해 효과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는 ‘세로토닌 결핍과 우울증의 직접적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세로토닌 불균형을 바로잡는 기전인 항우울제의 치료 효과 역시 재고해야 하지 않느냐’는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동안 대다수 연구에서는 항우울제의 효과가 꾸준히 확인됐다. 대표적으로 2018년 국제 의학학술지 ‘랜싯’에 발표된 대규모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21종의 항우울제가 모두 위약 대비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들을 종합해 볼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세로토닌 가설이 모든 우울증 환자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항우울제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항우울제가 세로토닌 호르몬 조절뿐 아니라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의 분비 증가 및 뇌에서의 항염증 작용까지 다양한 치료 기전을 지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사실 이런 노력을 기울여 반론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안타깝다. 애당초 전문의약품으로 인증받으려면 위약에 비해 월등한 효과가 검증되는 과학적 실험 과정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수천억 원의 비용을 들여 개발하던 신약이 그 검증 과정을 끝내 통과하지 못해 폐기되는 일이 허다한 게 현대의학의 세계다.
나는 약의 효과를 매일 목격한다. 나도, 환자들도, 그리고 그 가족들도 놀라고 기뻐한다. 물론 모든 경우에 효과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항우울제의 치료 반응률은 평균 약 70% 수준으로 아직까지 한계가 크다. 아쉬움이 크지만 이 정도의 효과도 너무나 소중하다. 항암제가 모든 이를 살리지 못하지만 매우 소중한 치료제인 것처럼, 항우울제 역시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삶의 질을 개선시켜 왔다. 이렇게 삶을 변화시킬 기회를 잘못된 정보와 편견들이 가로막는다. 적절한 시기에 치료가 시작되는 것을 막고 충분한 기간 동안 약물 치료가 유지되는 것을 막는다. 조심성 없는 발언 하나가 누군가의 삶에는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2017년 팟캐스트를 시작으로 2019년 1월부터 유튜브 채널 ‘정신과의사 뇌부자들’을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를 소개하고 있다. 6월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26.9만 명이다. 에세이 ‘빈틈의 위로’의 저자이기도 하다.
김 원장의 ‘정신과 의사들이 말해주지 않는 항우울제의 진실??’ (https://www.youtube.com/watch?v=JZ39jg9Id04&t=11s)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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