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섭 칼럼]여론조사 정상화를 위해 참여비 지급을 의무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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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률 낮아 양극단 과대 표집-분열 조장
참여비 지불하면 조사 줄어 응답률 높아져
‘공짜 조사’ 양산 언론-업체 이해관계 깨야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여야 모두 여론이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하니 여론조사 결과 발표 때마다 논란이 된다. 여론조사가 양극화를 조장하는 것이다.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필자는 작년 10월 29일자 칼럼에서 ‘여론조사업체 등급제’ 도입을 주장했다. 조사기관별로 실제 선거 결과와의 오차를 추정해 등급의 기준으로 삼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등급제 정착에는 ‘옥석 가리기’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즉각적 효과를 낼 만한 방안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상당액(최소 5000원 정도)의 여론조사 참여비 지급을 의무화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 응답률 하락이 큰 문제다. 탄핵 정국 이전 실제 응답률을 기준으로 보면 대개 전화면접 조사는 평균적으로 2∼4%, 자동응답(ARS) 조사는 높아야 0.5∼1%를 넘기 힘든 수준이었다. 목소리 큰 양극단은 과대 표집되고 정작 중요한 중도층은 과소 표집될 것이 뻔하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로 인한 ‘샤이 보수’ 현상으로 ‘진보’ 과대 표집이 의심되던 시절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서는 공론조사 참여자 추출을 위한 예비조사를 했는데 응답률 제고를 통해 대표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참여자 2만여 명 전원에게 5000원을 지급했다. 미응답자에게 ‘콜백’도 여러 번 했다. 이렇게 거의 50% 응답률을 달성했다. 같은 주 한국갤럽 주간 조사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50%였던 데 반해 이 조사에서는 39.6%로 격차가 상당했다. 응답률 제고의 중요성과 그 방법을 잘 보여준다.

현재는 아예 법이 응답률 제고의 걸림돌이다.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 규정상 정당 지지도 조사 등 ‘선거 여론조사’로 분류되면 1000원 이상의 참여비를 지불할 수 없다. 1000원은 충분한 유인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1000원이라도 지불할 리가 없다. 1000원은 되고 5000원은 안 된다는 기준도 모호하다. ‘신고리 5·6호기’ 조사업체는 법 규정 자체를 몰랐는지 당시 공론화위원장은 김지형 전 대법관이었는데도 ‘5000원 지급’으로 실정법을 위반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조사업체들에 응답자들에 대한 참여비 지급을 의무화해야 한다. 통신료에서 감해주면 가장 간단할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사례로 보면 모든 응답자에게 최소 5000원을 지급한다면 획기적인 응답률 상승과 비표본 오차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조사업체는 1000명 표본 확보를 위해 최소 500만 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이 경우 200만∼4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진 ARS 조사비는 두 배 이상이 돼야 하고 의뢰 언론사가 적어질 것이다. 전화면접 조사 비용도 1.5배 정도로 증가해 수요가 크게 줄 것이다. 여론조사 수가 줄면 전화 시도 자체가 줄 것이고 응답률을 더 높이게 돼 선순환 구조가 완성될 수 있다.

알면서도 안 되고 있는 이유는 언론, 여론조사 업계 등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포털 중심 뉴스 유통으로 현재 우리나라 등록 언론사가 1만5000개에 달한다. 정치 기사 중 여론조사 기사는 클릭 수를 올리는 일등공신이지만 대부분 언론사들은 자체 여론조사를 하지 않는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업체 입장에서 ARS 조사는 비용은 거의 안 들고 1만5000개 언론사를 통한 홍보 효과는 엄청나다 보니 무료로 해줘도 남는 장사다. 어차피 인지도를 높여 정부 발주 조사 등을 수주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전화면접 조사를 주로 하는 업체들에도 참여비 지급은 가격 상승 요인이 되고 주요 언론사들조차 여유가 별로 없다. 주요 언론에서 의뢰하는 조사 물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고 잘 팔리는 여론조사 기사도 줄여야 한다. 모든 조사업체와 언론이 이 문제에 대해 함구하는 이유다.

반면 이런 문제를 다뤄야 할 여심위는 최근 여론조사 업체 소속 인사들이 위원으로 활동 중이거나 과거에 활동했던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시중 은행의 임직원을 금융위원으로 임명한다면 말이 될까.

작년 10월 여심위 자료에 따르면 22대 총선에서 언론공표용 조사만 2531건, 사용된 전화번호는 약 1억4000만 건에 달했다. 반면 평균 응답률은 역대 최저였다. 비공표용 조사까지 포함하면 사용된 전화번호는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됐다. ‘보통 사람’이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응답률 하락으로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여론은 더 분열된다. 모든 유권자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여론조사 업체와 언론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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