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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미역이란?[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26〉

4 days ago 4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미역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먹었던 식재료가 아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세계 100대 악성 침입외래종으로 미역을 선정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미역을 해양 생물 다양성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외래종으로 지정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주 해안을 중심으로 미역이 빠르게 번식하자 제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미 당국은 미역 포자가 선박의 평형수를 통해 이동한 것으로 파악했다. 미역의 존재를 알지 못하거나 바다 잡초로 인식하던 사람들은 난데없는 미역의 출현에 당황했다.

미역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한국이다. 아이를 낳고 미역국을 먹는 건 오랜 우리 관습이고, 생일 때 먹는 미역국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음식이다. 삼칠일(21일)이나 백일에 미역국을 끓여 아이를 점지해 준 삼신에게 바치는 풍속도 있다. 삼신상에 차린 밥과 미역국은 산모가 먹게 했다. 이는 미역이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고려를 방문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고려도경’(1123년), 고려시대를 다룬 조선의 사서인 ‘고려사’(1454년) 등의 문헌은 고려인이 미역을 먹었다는 내용을 전한다. 명나라의 약학서 ‘본초강목’(1590년)도 ‘고려 사람들은 미역을 즐겨 먹는다’고 했다.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19세기 초)에서는 어떤 사람이 바다에서 헤엄을 치다가 막 새끼를 낳은 고래에게 먹혀 배 안에 들어갔다가 살아서 나온 재미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고래의 배 속에 미역이 가득 붙어 있고, 나쁜 피를 미역이 정화해 물로 변해 있었다. 고래 배 안에서 빠져나온 후 미역이 산후조리에 효험이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고 했다. 이야기의 진위를 떠나서 오래전부터 미역을 산후조리 음식으로 먹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미역에는 철분과 아이오딘 성분이 많아서 혈액 생성과 순환에 도움을 준다.

고려 문종 12년(1058년)에는 ‘곽전(藿田·미역이 자생하는 바위)’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미역바위를 밭처럼 취급해 ‘곽세’라는 세금을 부과했다. 울산 판지마을 해안에는 곽암 혹은 양반돌, 박윤웅돌이라 부르는 미역바위가 있다. 박윤웅은 나말여초 때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지방 호족세력을 정비하는 것을 도왔다. 공훈을 인정받아 미역바위 12구를 하사받아 대대로 미역 채취권을 가졌다. 조선 영조 때 미역바위 소유권을 나라에 환수시켰는데 3년 내내 미역 흉작이 들자 12구 중에서 1구를 다시 박씨 문중에 줘 일제강점기까지 소유권이 이어졌다. 현재 박윤웅돌은 판지마을 어촌계에서 관리하는데 상품성 좋은 돌미역을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이 미역바위는 바닷물 속에 잠겨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서 울산 기념물로 지정됐다.

울산, 전남 진도 등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암반에서 생장한 돌미역은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오래 끓이면 뽀얀 국물이 우러나 산모용으로 인기가 높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제주도 해녀들은 뭍 해안으로 돌미역을 채취하러 왔다가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반도 어촌 곳곳에 자리 잡은 해녀가 제주도에서 물질하는 해녀보다 많다. 제주 해녀를 육지로 불러낸 건 미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역은 한국인에게 특별한 해조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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