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지역을 살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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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지역을 살리는 길

모두가 방향을 알고 있다. 사람과 돈이 몰려오게 하면 된다. 35년간 지방자치를 해오며 시행착오도 겪었다. 보여주기식이나 겉만 베끼는 정책은 지속하기 힘들다. 선거에서 우수한 일꾼을 뽑는 것 이상으로 K-지방자치의 고질적 한계를 넘기 위한 근본 혁신이 중요한 이유다. 긴 호흡으로 지역별 여건과 장단점을 분석해 현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계획을 상향식으로 추진해야 한다.

농업 영역에서 보면 ‘로컬(local)’과 ‘아티자널(artisanal)’이 답이다. 전자는 지역 농산물, 후자는 장인의 손을 거친 가공 제품이다. 둘이 함께 가면 최상이지만 따로 가는 사례도 많다. 스위스 유명 초콜릿 전문점 트리스탄은 제네바 외곽 산골 마을에 있었다. 구글맵 평점과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수준급 맛에 놀라서 그곳 사장에게 “왜 브랜드화하거나 지점을 내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장은 “더 규모가 커지면 맛을 지킬 자신이 없어 현재에 만족한다”고 했다.

프랑스 전역에는 ‘오베르쥐’라 불리는 숙소 겸 마을 식당이 있다. 대부분 지역 고유의 농산물을 재료로 요리하는 곳이다. 프랑스의 중산층 가정은 고향에 별장을 두고 자주 들러 지역 주민과 어울린다. 이들은 동네 식당에서 지역 음식을 먹고 돈 쓰는 것을 자기 지역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로마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세체’는 이탈리아어로 ‘카르치오피’라 불리는 다년생 엉겅퀴 식물 ‘아티초크’로 특화된 마을이다. 4월의 카르치오피 축제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먹은 음식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과거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준비할 당시, 협상 관계자가 “농업 분야 최우선 순위는 단연 지리적 표시”라고 하는 말에 놀란 적이 있다. 관세 이상으로 품질과 명성을 보호해 경쟁력이 있는 와인과 치즈, 특산물 등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였다. 지리적 표시는 음식도 포함한다. 예컨대 채소와 향료를 곁들인 통돼지 바비큐 포르케타는 로마 인근 소도시 아리차 지역에서만 지리적 인증을 받았다.

지금까지 EU에서 3600개 이상 농산물과 음식이 지리적 표시를 획득했다. 올해부터 농장과 식탁을 넘어 지역 공예품까지로 보호 범위를 확장한다. 소비자 선택을 돕는 품질 등급과 철저한 사후 관리는 농정뿐 아니라 지역을 살리는 데 중요하다.

우리도 우루과이라운드(UR) 출범 후 지리적 표시제를 도입했다. 아쉽게도 제도 소관 다툼과 느슨한 관리 탓에 지금은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반면 우리나라보다 한참 늦은 2015년 말부터 시작한 일본은 와규, 말차 등 약 150개를 선정해 수출 전략에 활용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제도 자체에 목적을 두기보다 취지와 본질에 집중해 세대를 뛰어넘는 헤리티지로 발전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같은 맥락으로 중앙에서 최대한 예산과 사업을 끌어와 다음 선거용 치적으로 포장하는 일을 제대로 걸러내야 미래 세대 부담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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