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빠른 것.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뒤처진다.” “선점하는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혁신은 그렇게 빠르게 오지 않는다. 아이디어의 전개와 기술 발전은 빠를 수 있지만 인간사회의 변화는 느리다. 시장은 관성이 크고, 제도의 변화는 더 더디다. 내가 아무리 원해도 세상은 쉽사리 바뀌지 않으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전기로 달리는 마차가 등장한 것은 내연기관보다 훨씬 이른 1800년대 중반이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 충전 인프라, 소비자의 수용성 등이 맞지 않아 두 세기 이상 외면당했다. 한참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AI)도 존 매카시가 최초로 개념을 제시한 것은 1955년이었으나 수차례의 ‘AI 겨울’을 거치고 나서야 지금에 이르렀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일수록 수용 가능한 완성도와 시장의 이해를 확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데는 기대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린다.
이런 ‘혁신의 느린 걸음’을 견디는 힘이 전략적 인내다. 전략적 인내는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고도로 계획된 행동으로 구성된다. 시장과 경쟁 환경을 깊이 이해하며 나의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회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상품·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이고 선택 가능한 옵션을 개발하는 역동적 과정이다. 이 과정은 고통스럽다. 모든 혁신은 선례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완성도를 높여야 할지, 시장이 이 아이디어를 수용할지 알 수 없다. 누구나 퍼스트무버가 되고 싶어 하지만 퍼스트무버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가정용 비디오 시장에서 소니의 베타 방식이 후발주자인 VHS에 밀린 일은 이를 아주 잘 보여주는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의 이승건 대표는 “대부분의 성공은 운이지만 그 운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끈기”라고 이야기했다. 기회는 언젠가 온다. 문제는 그때 내가 준비돼 있는가다. 세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힘, 기다림을 통해 적절한 시점을 판단할 역량은 학교에서 배울 수도 없고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이 혁신을 구현하는 힘은 느린 걸음을 견디는 조직적 역량에서 시작된다. 성급함은 실패를 부르고, 노력이 뒷받침되는 인내는 기회를 만든다. 때로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가장 전략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 완급을 조절할 수 있는 조직만이 궁극적으로 판을 바꾼다. 그전의 모든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혁신의 완성, 그것이 전략적 인내이고 혁신의 진짜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