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노동조합과 경영진 간 협상이 마무리될 때쯤 노조위원장을 맡은 친구로부터 근심이 가득 담긴 전화가 온다. 협상 잠정안을 보면 나쁘지 않은 임금인상률이어서 당장 체결해도 될 것 같은데 불만 많은 일부 간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면 그보다는 더 받는다”라는 식의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한마디로 불만을 키워 노조 집행부를 압박한다. 그러면 자신도 입장을 뒤집어 회사에 다시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고. 그렇다고 더 나은 임금 인상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노조위원장도 직업인데 일종의 보여주기식 쇼도 필요하고 연임하려면 인상률을 더 올리지는 못해도 투쟁하고 싸운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한다.
회사 측에서 누가 교섭에 나오는지를 따지는 소위 ‘급 맞추기’로 몇 달씩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이사가 안 오면 교섭은 없다. 고용노동청에 교섭을 제대로 안 한다고 신고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런데 정작 대표가 오면 목청만 더 높일 뿐이다. 귀가 빨개진 대표는 자리를 뜰 수밖에 없고 노조는 급이 되는 사람에게 목소리를 높였다는 포인트로 조합원들에게 열을 올리며 홍보한다. 이쯤 되면 노사 간 교섭은 근로자 처우 개선이라는 본연의 목적보다 보여주기식, 혹은 분풀이 수준으로 전락한다. 경영진은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대부분 노조를 싫어하고 피하게 된다.
요즘 부쩍 경영 현장에서 노사 간 신뢰가 무너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업은 노조가 앞뒤가 다르기 일쑤라고 푸념한다. 회사 입장을 이해한다고 해놓고 돌아서서는 비방하고,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뒤로한 채 투쟁한다고 목소리부터 높인다는 것이다. 노조 역시 회사는 불신의 대상이다. 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양보를 요구하고, 막상 협조하면 자신들을 존중하지 않고 양보한 약속마저도 외면한다고 토로한다.
얽힌 실타래를 풀려면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우선 노조는 투쟁과 쟁취라는 단어를 내려놔야 한다. 쟁취는 ‘어쩔 수 없는 내어줌’이다. 상대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닫게 하고 쟁취를 주장하는 자를 의심하게 만든다. 노조를 투쟁으로 내몬 것은 기업 아니냐는 반문도 적지 않다. 그러나 동종 업계 유사 규모 기업 간 비교를 해보면 투쟁과 쟁취 없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임금 수준이 더 높은 경우가 적지 않다. 싸움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기업도 일부 노조의 과격함만 보고 전체 노동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 역시 혹여 표를 위해 노사를 갈라치고 있지는 않은지 늘 유념하고 경제 본질에 맞게 법개정을 검토해야 한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의 경쟁력은 언제나 노동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신뢰로 다져진 노사 관계는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국가의 근간이 된다.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는 서로가 상대방에게 한 걸음 먼저 다가가는 용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