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어머니들은 밥상을 차릴 때 항상 집안의 어른을 먼저 생각하고 어른이 좋아하는 음식을 중심으로 밥상을 차렸다. 존중의 의미에서 따로 밥상을 차려 올리기도 했다. 밥상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을 때도 집안 어른이 숟가락을 들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은 숟가락을 들지 않고 기다렸다. 어른이 숟가락을 들면 그제야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한 상을 차려 온 식구가 다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이 한식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한국의 기나긴 농경문화의 역사는 항상 풍족하지 못했다. 심지어 20세기에 들어서도 풀의 뿌리를 먹거나 나무의 껍질을 벗겨 먹던 소위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생활고를 거치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밥상 한 상을 차려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른을 존중하고 자식들을 배려한다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가능했던 것이다. 예부터 찾아오는 친척이나 이웃 손님에게 밥상을 차려 대접하는 것 또한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형편이 다소 어려워도 길 가는 나그네에게까지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한식에서 밥상을 차리는 것에는 음식의 종류와 양, 대접하는 대상에 관계없이 젓가락 선택권을 배려하는 마음과 정성이 깃들어 있다. 서양에서는 일단 메뉴가 결정되면 그 음식은 디시(dish·접시) 위에 놓아 혼자 독점적으로 먹기 때문에 존중과 배려가 들어갈 수 없다. 반면 한식은 한 밥상에서 젓가락으로 반찬을 선택해 자유롭게 먹기 때문에 존중과 배려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 레스토랑에 가서도 몇 가지 음식을 함께 시켜 서로 나눠 맛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네 명이 한 일행이 돼 레스토랑에 함께 들어갈 경우 서양 레스토랑은 메뉴판 네 개를 각각 나누어 주지만 한국 음식점이 메뉴판을 하나만 주는 이유다.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에 함께 상의해서 메뉴를 고르라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온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양보하는 문화가 메뉴판 수에서도 나타난다. 서양 음식문화는 메뉴판에서 결정되면 그 이후로 더 이상의 선택권이 없지만, 한식의 경우 음식을 시킨 다음에도 음식이 바로 입에 들어가기 전까지 최종 선택권이 살아 있다. 본질적인 한식(K푸드)의 밥상문화 철학을 이해하면 세계화의 필요조건 중 하나를 충족하는 셈이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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