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3·1절[임용한의 전쟁사]〈355〉

1 week ago 4

2025년 3·1절에 대한민국은 이날이 서로 다른 함성을 외치는 시위대로 채워지는 경험을 했다.

3·1절은 고종의 인산날을 계기로 발생했다. 고종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국왕으로서 고종의 리더십, 능력은 유능하지도 올바르지도 않았다. 대한제국 시기에 고종은 분명히 부국강병을 위한 노력을 했으나 그 방법이 한심할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후발 국가가 국가 주도로 근대화를 추진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고종은 황실과 국가를 완전히 혼동했다. 고종은 국가의 모든 자원, 세원을 정부 재정이 아닌 왕실 수입으로 전환했다. 모든 근대화 사업도 왕실 직영으로 추진했다.

대한제국 시기에 독립협회는 한국의 자원, 삼림의 개발권을 외국에 넘기는 행위를 비판하고 저항했다. 동시에 황실이 집어삼키는 것도 반대해야 했다. 왕조시대의 왕들이 다 그렇지 않느냐, 다른 나라도 그런 사례가 있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당연히 그렇고, 고종도 일본과 외국의 사례를 많이 연구했다.

하지만 실제로 고종이 구성한 정부 기구나 국가경영 구조를 보면 도저히 제대로 된 점수를 줄 수가 없다. 무능하고 욕심만 많았다. 역사가가 인물이나 사건을 평가할 때 애로사항이 의도와 실적 간의 배점이다. 의도를 높이 쳐준다고 해도, 현실과 능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고종의 치세에 국론과 방법은 크게 분열됐다. 그 와중에 고종은 근시안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만 했다. 그의 장례일에 국민이 한목소리를 낸 건 이미 국권상실이라는 처참한 결과에 전 국민이 직면해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 3·1절이 분열의 날이 된 이유는 아직 결과는 미래에 있고, 정치는 무능과 극단적 이기심에 끌려가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마저 부정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과거 고종은 한 명이었지만 지금은 고종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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