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중국이 만만디(慢慢的)라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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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중국이 만만디(慢慢的)라는 착각

“정말 물건이던데요.” 최근 중국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만난 한국 기업 관계자는 배우자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로보락을 샀다며 이렇게 말했다. 삼성전자·LG전자의 기술력도 뛰어나지만 지난해 미국 아이로봇을 누르고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글로벌 1위(출하량 기준)에 오른 중국 로보락의 성능이 기대 이상이었다는 감탄도 내놨다.

며칠 뒤 우연히 들은 중국 정보기술(IT) 업체 임원의 말은 이런 상황을 이해시키기에 충분했다. “중국에선 무조건 3개월마다 신기술·신제품을 발표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바로 도태되니 방법이 없어요.”

딥시크에 감춰진 진짜 경쟁력

한국인에게 만만디(慢慢的)는 중국인의 여유로운 기질을 표현하는 대표적 단어다. 기약 없이 연기되고 예고 없이 늦춰지는 답답한 행정 시스템 등을 비꼴 때 쓰이기도 한다. 실제 한국에선 반나절이면 끝날 서류 발급조차 중국 현지에선 1주일씩 기다려야 하는 게 예삿일이다.

그런데 이런 만만디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 분야가 있다. 바로 첨단기술이다. 일단 목표를 세우면 계획 수립부터 실행, 점검, 수정, 재실행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진다. 올해 들어 저비용·고성능을 앞세운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전 세계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일찌감치 예견된 일이었다.

중국 정부는 2017년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공개했다. AI 발전을 국가 전략으로 삼고 2030년까지 세계 AI 분야에서 선두주자로 도약하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계획을 내놓은 이듬해 각 대학에 AI 관련 학과와 전공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개설했다. 이때 전국 각 대학에만 AI 관련 학과가 2000개 이상 세워졌다.

중국 내 AI 관련 업체는 167만 개로 추정되는데 이 중 90%에 육박하는 148만 개가 이 계획 이후 세워졌다. 이 계획엔 올해까지 AI산업에서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포함됐다. 그리고 을사년이 밝자마자 딥시크가 세계 AI 시장을 발칵 뒤집어놨다.

모델 개선에 딱 72시간

중국 정부에만 해당하는 말도 아니다. 민간 업체는 더하다. 딥시크의 경쟁력을 분석한 중국 현지 벤처캐피털 최고경영자(CEO) 얘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적은 자본과 기술 혁신 등 두루뭉술한 말로는 설명되지 않던 딥시크의 진짜 경쟁력을 이 CEO와 차담을 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20년가량 중국 AI 스타트업에만 투자하고 있는 이 CEO는 “딥시크의 진짜 경쟁력은 특수부대형 조직 모델에서 나오는 민첩성”이라고 단언했다. 전통적 IT 업체처럼 제품, 기술, 운영 부서를 따로 두지 않는 초탄력적 인력 배치 시스템이 핵심이라는 말이었다. 이를 통해 ‘72시간 내 AI 모델 개선과 업그레이드’라는 극한의 목표 속에서 모델 개발 주기를 앞당기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한국인 사이에선 은연중에 중국은 IT 분야에서 그저 저가 양산형 제품만 쏟아내는 기술 후진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중국이 만만디를 벗어던지고 무섭게 드라이브를 거는 산업은 비단 미국과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 있는 AI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무엇하나 한국의 주력 산업과 겹치지 않은 분야가 없다. 치열한 전장에서 만만디하고 있는 국가는 과연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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