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임우선]미국이 믿는 신이 변하고 있다

1 week ago 4

임우선 뉴욕 특파원

임우선 뉴욕 특파원
‘우리는 신을 믿습니다(In God We Trust).’

미국의 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센트짜리 동전부터 100달러짜리 지폐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이 문구가 새겨져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미국의 공식 표어이기도 한 이 문구는 수도 워싱턴의 의회 건물부터 연방정부 건물 청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중요한 건물에도 새겨져 있다. 이 문구는 1864년 처음 등장해 1956년 정식 국가 표어로 지정됐다. 여기서 ‘신’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기독교(Christianity)의 하나님을 의미한다.


‘신’을 통해 통합과 평화 추구한 미국

미국은 국교(國敎)가 없는 나라지만 미국에서 살다 보면 이 나라가 ‘크리스천 가치’를 중심으로 통합을 추구해 온 곳임을 느끼게 된다. 미국의 1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이 취임식 때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했다. 취임식 날 첫 일정을 교회 예배로 시작하는 것도 오래된 전통이다. 이제 국내 학교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국기에 대한 맹세(충성의 맹세)’를 미국은 여전히 거의 모든 학교에서 매일 아침마다 하는데, 이 짧은 맹세에조차 ‘하나님 아래 하나’라는 표현이 들어간다. 미국은 그 어떤 사회보다 자발적 봉사와 기부가 생활화돼 있으며, 타인을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한 이들을 오랫동안 잊지 않고 기억하며 존경을 표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과거 이 같은 크리스천 가치를 미국을 넘어 세계에 전한 대표적 이들이 미국인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가난한 나라를 찾아가 환자를 진료하고, 병원을 세웠으며, 미국 신앙인들의 기부금을 끌어다 학교를 세우곤 했다. 이들은 전염병에 걸려 지구 반대편에서 죽기까지 하면서도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금언을 따르고자 도저히 갚을 도리가 없는 이들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은혜를 베풀었다. 미국의 이런 문화는 훗날 ‘소프트 파워’라는 이름으로 세계 각지의 구호와 지원 활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돈’으로 바뀐 위대한 가치

기회가 될 때마다 ‘신’과 ‘축복’, ‘성경’과 ‘기도’를 언급해 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 250여 년간 추구해 온 이러한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그래서 꽤 아이러니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 때마다 입버릇처럼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를 외쳤고, 하나님 덕에 총격 암살 시도에서 살아났다고 말했다. 또 미국을 다시 기도하게 하자며 직접 성경까지 팔고 있다. 하지만 취임 다음 날 예배에서 메리앤 버드 성공회 주교가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자 “무례하고, 심술궂으며, 설득력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후 우리가 아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는 미국과 미국이 아닌 나라를 나누었고, 미국인과 미국인이 아닌 사람을 갈라쳤으며, 많은 사안을 돈으로 환산해 ‘기브 앤드 테이크’를 요구하고 있다. 출생 시민권 폐지, 72억 원 짜리 영주권(골드 카드) 판매, 교회와 학교에서의 불법 이민자 단속, 각종 난민과 인권 국제기구에서의 탈퇴, 미국의 대외 원조를 수행해 온 국제개발처(USAID) 폐쇄,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해 온 5800여 개의 프로젝트 종료…. 얼마 전 열린 첫 각료회의는 기도로 시작됐지만, 이후 내용은 대부분 ‘연방 정부 공무원 자르기’로 채워졌다.

미국의 많은 결정이 ‘돈’과 ‘미국의 이익’에 따라 내려지는 지금, ‘우리는 신을 믿습니다(In God We Trust)’는 ‘우리는 돈을 믿습니다(In Money We Trust)’로 바뀌어 버린 것 같다. 미국을 그저 크기만 한 나라가 아니라 ‘위대하고, 특별한 나라’로 만들었던 가치들도 그와 함께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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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선 뉴욕 특파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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