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상훈]日 극우 닮아가는 한국의 외국인 혐오증

3 weeks ago 4

이상훈 도쿄 특파원

이상훈 도쿄 특파원
일본에서 잊을 만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도는 게시물이 있다. 일본 땅에서 사는 재일 힌국인들이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권리만 누린다는 것이다. “차별 피해자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특권 계급”이라며 비난을 퍼붓는다.

‘재일 한국인은 일하지 않고도 연간 600만 엔(약 5400만 원)을 받는다’ ‘범죄를 저질러도 언론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 ‘의료, 수도 등이 무료로 제공된다’…. 재일 교포의 현실을 알면 헛웃음도 안 나올 내용이지만, X에서 ‘재일특권(在日特權)’이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무수히 많은 게시물이 나온다.


있지도 않은 ‘특권’ 누린다며 비난

일제강점기부터 100여 년 이어져 온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은 세계적인 외국인 인권 침해 사례로 다뤄야 할 만큼 차별로 굴곡진 역사 그 자체다. 과거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재일교포 1세들은 강제징용 등으로 끌려갔거나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해탄을 건넌 이들이 대다수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후 국적 박탈 같은 굵직한 법적 차별은 물론 취업 및 사회보장 배제, 혐한 시위 등 헤아리기도 힘든 수많은 일상적 차별에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했다. 지독한 차별을 견디다 못해 한국식 본명 대신 일본식 통명(通名)을 쓰거나 귀화 후 한국 출신임을 감추는 재일교포도 많다.

SNS에 떠도는 이런 글이 대체로 그렇듯, ‘재일특권’은 애초 일본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빈곤 고령 외국인 영주자에게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월 1만 엔(약 9만 원) 안팎 보조금을 주는데, 이를 마치 떼돈처럼 왜곡한다. 외국인 세금 면제는커녕 사업이 어려워져 본의 아니게 일시 체납을 해도 영주권이 박탈될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정부가 과거 자행했던 법적 차별은 많이 완화됐다. 하지만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한 차별 분위기 조성은 더욱 교묘하고 노골적이다.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 같은 극우 단체가 대표적이다. ‘구키(공기·空氣)를 읽는다’는 특유의 문화가 지배하는 일본에서 이런 소수 단체가 목소리를 높이면 대다수는 침묵하며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혐한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 같은 극우 정치인은 이런 토양에서 성장한다.

극단화돼 가는 한국 사회에서 최근 많이 나타나고 있는 외국인 혐오증은 일본 극우 단체가 사회 곳곳에서 퍼뜨린 외국인 차별 혐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한다며 이웃 국가에 대한 교묘한 간섭과 위협을 키우는 중국에 대한 불만으로 국내 체류 중국인과 조선족에 대한 차별과 부정적 인식이 커지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동남·서남아시아 출신에 대한 노골적 차별, 나아가 혐오감 역시 부끄럽지만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각에선,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추진 중인 강력한 이민자 추방 정책이 한국에서 점점 커지고 있는 외국인 차별에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잘못된 제노포비아, 우리 경쟁력 떨어뜨려

재특회로 대표되는 일본의 외국인 혐오증은 장기 경제 불황, 자국 턱밑까지 따라온 한국의 경제 성장, 한류 열풍 등에 열등감을 느낀 극우 세력들이 만들어 낸 사회 병증이다.

부정 선거에 중국인 간첩이 개입했다거나 특정 정치인 뒤에 화교가 있다는 식의 근거 없는 허위 정보가 난무하는 지금의 한국은 20년 전 일본의 모습과 닮아 있다. 장기 저성장 초입에 들어서며 ‘오늘보다 못한 내일’이 시작된 한국에 퍼지고 있는 ‘제노포비아’는 우리의 미래 경쟁력을 떨어뜨릴 독버섯이다. 외국인 혐오를 일삼으며 결과적으로 자국 국익에 해를 끼친 일본 극우 세력의 민낯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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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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