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에서 당시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참패한 뒤 공화당 짐 데민트 상원의원은 이렇게 호소했다. 한때 ‘보수 장기 집권’ 시대를 꿈꿨던 공화당이 대선과 상·하원 선거에서 모두 패배하자 당내 자성(自省)부터 촉구했다.
그로부터 17년이 흘러 2025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권좌에 올랐다. 공화당은 상·하원도 모두 장악했다. 반면 야당이 된 민주당은 무기력하다. 민주당은 백악관을 잃은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충격에만 머물러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진단했다. 공수(攻守)만 바뀌었을 뿐, 17년 전 공화당이 느낀 무력감과 상실감을 민주당이 그대로 느끼고 있단 얘기다.
여전히 대선 충격에 머물러 있는 민주당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 중반에 그쳤다. 일부 언론은 “트럼프의 정치적 허니문이 벌써 끝나간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그 반사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한다. 오히려 처참하다. CNN 조사에선 응답자의 75%가 “민주당이 트럼프 견제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지난달 말 미 퀴니피액대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7%가 민주당을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퀴니피액대가 이 질문을 하기 시작한 2008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였다.
2차 세계대전을 치른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 6·25전쟁을 치른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특수한 상황이 반영돼 ‘제왕적 대통령제’를 누렸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우 높은 대중적 인기 덕분에 야당 입장에선 맞서기 버거운 상대였다. 이와 달리 트럼프 시대를 사는 야당이 이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을 해석하려면, 결국 민주당 자체의 문제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워싱턴 안팎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민주당의 문제는 국민 ‘니즈’ 파악에 대한 실패다. 지난해 민주당은 급등한 물가 등 피부에 와닿는 이슈를 읽지 못하고 동떨어진 어젠다로 일관해 정권을 내줬다. 그런데도 여전히 엉뚱한 곳만 전장으로 선택해 뜬구름 잡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는 게 WP의 평가다.내부 쇄신 없인 다음 대선도 어려워
이런 민주당의 상황은 당내 갈등과도 무관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에 나선 4일, 민주당이 남긴 그나마 인상적인 장면은 두 개였다. 하나는 77세 하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지팡이를 휘두르며 소리치는 장면, 다른 하나는 40대 여성 상원의원이 트럼프 연설 후 ‘대응 연설자’로 나서 중도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대조되는 두 컷을 현재의 분열된 민주당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꼽았다. 급진 진보 성향 세력과 중도 성향 세력 간 당내 갈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겨냥한 ‘항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단 의미다.
민주당에선 신속 대응 전담팀 구성이나 대규모 유권자 동원 같은 타개책도 냈지만, 이런 낡은 전략부터 버려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새로운 얼굴, 신선한 정책 의제를 발굴하려는 치열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2008년 당시 공화당은 의원들이 치열한 난상토론을 벌이는 등 활로를 모색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현재 민주당은 ‘견제 심리’ 때문에 집권 여당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내년 11월 중간선거만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리고 당 안팎에선 이전의 중간선거만 믿고 내부 쇄신과 유권자들의 니즈 파악을 게을리하면 다음 대선도 쉽지 않다는 관측이 이미 나온다. 민주당에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신진우 워싱턴 특파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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