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동맹 압박 수단 된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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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동맹 압박 수단 된 '표현의 자유'

“‘나쁜 트윗’을 올렸다는 이유로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게 독일이라면, 독일에 수천 명의 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미국 납세자들이 용납할까요?”

지난달 20일 미국 메릴랜드주 내셔널하버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장. 단상에 오른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그는 독일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 문제를 미군 주둔과 연결시켰다. 밴스 부통령은 “미국은 유럽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겠지만, 동맹의 강도는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미 1주일 전 유럽에서 폭탄 발언을 하고 온 터였다.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밴스 부통령은 “유럽연합(EU) 관료들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며 “유럽의 가장 큰 위협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라 내부에서 온다”고 주장했다. 이어 독일 주류 정당이 극우 성향인 독일을위한대안(AfD)과의 협력을 거부하는 걸 비판했다. 20분에 걸친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설교는 유럽 정치인들에게 얼음물 바가지를 뒤집어쓰는 듯한 충격을 줬다.

"트럼프 가치관 공유해야 친구"

밴스 부통령은 지난달 27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백악관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우리는 (영국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는 영국인뿐만 아니라 미국 테크회사, 나아가 미국 시민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스타머 총리가 반박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혼자 러시아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응수했다.

이런 발언들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은 “표현의 자유 절대주의자”라며 검열을 반대한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미국 부통령이 ‘미국의 지원과 보호를 원한다면 트럼프식 가치관을 받아들이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무게감이 다르다. 밴스 부통령은 CPAC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만이 미국의 친구가 될 것”이라며 “우정은 가치 공유에 기반한다”고 했다.

밴스 발언, '달라진 미국' 상징

밴스 식 표현의 자유는 서방 세계가 추구해 온 ‘혐오 발언을 배제하는’ 표현의 자유와는 결이 다르다. 밴스 부통령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판한 독일의 법률은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옹호 발언을 금지한 것이다. 사전검열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만큼 논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는 이런 문제를 각국 내에서 스스로 토론을 통해 결정해 왔고 그게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밴스 부통령의 세계관 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이 이 문제에 개입할 권한과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종전에는 배척됐던 극우 이념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 올 수 있게 하려는 의도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동맹국의 정치 지형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트럼프 1기 때와 완전히 성격이 달라진 대목이다. 미국 정치 지형은 언론에 ‘애국적’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내세우지만 전체주의적인 색깔이 더 진하다. 세계 구질서와의 전쟁을 선포한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이 만드는 새로운 세계 정치 질서에 편입되도록 동맹을 압박하고 있다. 분열된 한국의 정치 지형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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