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유럽 패싱[임용한의 전쟁사]〈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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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자신이 당선되면 24시간 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은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하지만 믿고 싶은 사람은 상당히 많았고, 이것이 트럼프의 당선에 도움이 된 건 분명하다.

24시간은 이미 충분히 지났지만, 트럼프가 전쟁을 끝내려는 시도는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우크라이나 패싱’, ‘유럽 패싱’이란 논란을 낳고 있다. 트럼프는 왜 이러는 걸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시각에서 보면 종전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얻은 게 무엇인가를 국민에게 납득시켜야 한다. 트럼프의 유럽 패싱은 푸틴에게 초강대국 미국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다는 명분을 주고, 미국이 유럽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떠나게 해서 ‘나토의 동진’을 좌절시켰다는 선전을 할 수 있게 한다. 트럼프로서는 미국민에게 자기 과시를 확실히 하고 푸틴에게 명분도 주는 일거양득의 수이다.

그런데 종전을 위해서 푸틴에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러시아가 힘을 회복하면 다시 우크라이나를 칠 수 있다는 위협이다. 미국이 유럽을 버리면 종전과 무관하게 러시아의 위협은 가공할 힘이 되고, 이 기세가 지속되면 우크라이나에 친러시아 정권이 들어설 수도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유럽 패싱을 시도하자 지금껏 소극적이던 유럽이 즉시 평화유지군 파병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군사기지가 되는 건 절대적으로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판단은 분명했지만 국민을 설득하기가 힘들었다. 트럼프의 패싱은 유럽 지도자들에게 국방력과 나토 강화를 추진할 수 있는 명분을 준다.

푸틴에겐 종전의 명분을, 유럽에는 우크라이나의 재건과 러시아의 서진을 저지할 추진력을 준다. 트럼프의 이 교활한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푸틴에겐 실리가 너무 작고, 유럽엔 고통이 너무 크다. 트럼프의 두 번째 카드는 평화유지군에 미군을 포함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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