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은 세계적 현상이지만 유독 한국의 출산율 감소 속도가 빠른 이유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출산율은 지난 50년간 연평균 3%씩 감소했다. 이렇다 보니 흑사병이 창궐한 14세기 중세 유럽의 인구 감소 속도보다 빠르다는 분석도 나왔다. 경제 양극화, 사회적 불평등, 치솟은 집값, 지나친 교육열 등 저마다 한국인이 아이를 낳지 않는 원인을 꼽는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딱 떨어지는 대안 없는 현상 분석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얼마 전 읽은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의 최근 논문은 한국의 저출산 현상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통찰을 제공했다. 골딘 교수는 2023년 여성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다. 논문 제목은 ‘아기들과 거시경제(Babies and the Macroeconomy)’다. 논문에서는 거시경제적 변화 속도와 출산율 감소 간 상관관계를 규명했다.
흥미로운 분석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일수록 남녀 간 출산의 욕구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경제가 발전하면 여성은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자연스럽게 출산율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골딘 교수는 경제 성장이 급격한 국가에서 이런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고 주장한다. 이들 국가에서 여성의 경우 출산을 선택했을 때 불이익이 더 클 수밖에 없어서다. 남녀가 경제에 기여하는 정도는 비슷한데, 가정 내 남성 중심 전통적 가치관과 문화의 변화 속도는 더디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갑작스러운 경제적 변화 시기에 여성은 남성보다 더 적은 자녀를 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골딘 교수의 분석이다.
반면 점진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룬 국가에서는 가정 내 가치관과 문화의 변화가 함께 이뤄진다. 남녀 간 가사와 육아 분담이 비교적 균등한 이유다. 이런 국가는 합계출산율도 높은 편이다. 경제 발전이 서서히 이뤄진 덴마크는 남녀 간 가사 및 돌봄 노동 시간 차이(2019년 기준)가 0.9시간에 불과하다. 반면 급격한 경제 성장을 보인 일본은 이런 차이가 3.1시간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가사와 돌봄에 3.1시간을 더 쓴다는 얘기다. 자연스럽게 덴마크 출산율(1.7명)이 일본 출산율(1.36명)보다 높다.
한국은 가장 극단적인(extreme) 사례로 꼽혔다. 한국에서 출산 적령기를 지나고 있는 1980년대생의 부모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결혼 시점까지 실질 소득이 크게 증가하는 경험을 했다.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962년 91달러였지만 1987년 3615달러로 40배 가까이 폭증했다. 하지만 남편이 가장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아내가 집안일과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전통적 분위기와 가정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해도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고 노동시장에 진출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가계 소득 증가와 여성의 사회적 성장 사이에 일종의 과도적 시차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남성은 전통적 가치와 사고 방식에 익숙하고, 여기에서 벗어날 이유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반면 여성은 경제 발전에 따라 다양한 기회가 생겼는데, 가정 내 남성 중심 문화가 여전한 상황에서 혼인과 출산을 선택할 유인은 적다. 1980년대생 한국 남성은 부모 세대의 전통을 고수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나려는 같은 세대 여성과 충돌을 일으켜 한국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골딘 교수의 분석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저출산을 경제적 부담이나 정책 부재로만 접근하는 건 단편적이란 생각이 든다. 높은 주거비와 교육비, 부족한 보육시설 같은 현실적 문제도 저출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거시경제적 변화에 따른 남성과 여성 간 가치관 변화의 속도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어렵다. 남성에게 가부장적이라고 손가락질하거나 여성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저출산은 특정 성별의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역동을 반영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남성과 여성의 출산 욕구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논문의 결론이다. 지금까지는 가정에 헌신하는 어머니를 높이 평가했다면 이제는 가정에 기여하는 아버지를 대우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경제 성장의 과실을 가족 구성과 자녀 양육에 대한 지원에 재분배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이해된다. 9년 만에 출산율이 반등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