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메타가 퓨리오사AI를 사든 안 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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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메타가 퓨리오사AI를 사든 안 사든

“뭐하는 곳인데 마크 저커버그가 사려고 한대?”

근래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퓨리오사AI라는 회사는 정보기술(IT)업계에선 나름 유명하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었다. 삼성전자·AMD 출신 엔지니어가 2017년 창업한 스타트업인데,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한다. 엔비디아 칩에 비해 가격은 확실히 싸면서 성능은 준수한 ‘가성비 제품’을 잘 개발할 수 있다는 게 퓨리오사AI의 강점이다.

이 낯선 회사가 주목받은 계기는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인 미국 메타가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외신 기사였다. 몸값이 최대 1조원 안팎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메타는 자체 칩을 개발해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고 싶어 하지만 진척이 더디다. 경쟁력 있는 벤처를 사들이면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계산을 해볼 법하다. 이번주 들어서는 대만 TSMC가 퓨리오사AI에 투자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추가됐다. ‘퓨리오… 뭐?’는 몰라도 메타나 TSMC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때마침 AI 반도체 시장에 탈(脫)엔비디아 흐름이 거세지는 상황과 맞물려 흥미진진한 뉴스거리가 됐다.

세간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쪽에서는 해외 빅테크로부터 인정받는 반도체 설계 기업이 국내에 있다는 사실을 희망적으로 본다. 다른 한쪽에서는 유망한 스타트업의 인재와 기술이 외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퓨리오사AI 건에 대해 “스타트업의 엑시트(exit·지분 매각이나 상장 등을 통해 투자를 회수하고 성과를 보상받는 것)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고,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합리적으로 짚었다고 본다.

[토요칼럼] 메타가 퓨리오사AI를 사든 안 사든

스타트업이 해외 자본을 많이 유치하거나 글로벌 기업에 인수되면 마치 빼앗긴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4년 전 티몬이 미국 쇼핑몰의 투자를 받자 청년 창업자는 ‘먹튀 논란’에 휘말렸다. “저는 튀지 않았고 계속 경영합니다”라는 해명 인터뷰를 해야 했다.

지금은 인식이 꽤 바뀌어서 그런 황당한 논란은 없지만 말끔하게 지워진 것도 아니다. 쿠팡은 한국에서 삼성전자 다음으로 많은 8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고도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고 나스닥시장에 상장했다는 이유로 ‘일본 자본’ ‘미국 기업’ 소리를 듣곤 한다. 배달의민족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팔릴 때 “게르만의 민족이 됐느냐”는 비판적 여론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엑시트에 성공한 창업자들은 “이쪽 생태계가 잘 되려면 육식 공룡(대기업과 거대 자본)한테 먹히는 곳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통 큰 투자와 연쇄 창업까지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우리 기업에 우리 자본만 태워 세계로 뻗어나가게 하면 참으로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퓨리오사AI 임원이 국회 토론회에 나와 털어놓은 속사정은 이렇다. “매각하지 않고 투자받으면 좋은데 국내에서는 원하는 규모만큼 가능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AI 반도체 개발 업체는 조(兆) 단위 투자를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2000억원도 안 되는 투자금으로 경쟁해야 합니다.”(비밀 유지 조건이 걸린 민감한 계약에 굳이 사실 여부를 캐묻는 국회의원의 태도는 유감스러웠다.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수십억원 정도면 모를까 0이 두어 개 더 붙으면 실탄을 댈 수 있는 벤처 투자자가 많지 않다. 사실 이 문제는 10년 전에도 나왔던 얘기인데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래도 그때는 쇼핑이나 O2O(온·오프라인 연계)처럼 마케팅으로 승부하는 창업 아이템이 대세였다. 이제 그런 서비스는 한물가기도 했고 신생 업체가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다. 딥테크가 대세, 원천 기술이 필수인 만큼 대규모 투자금이 수혈돼야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

사실 퓨리오사AI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기업에서 인수 제안을 받아 왔다고 한다. 메타여도 좋고 메타가 아니어도 좋으니 합리적인 파트너를 만나 꿈꾸던 그림을 계속 그려 나갔으면 한다. “왜 외국에 팔았냐”는 힐난 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다. 만에 하나 없던 얘기가 된다고 하더라도, 퓨리오사AI가 꺼낸 화두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이 이뤄져야 한다. 종지만 한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그릇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2000억원도 안 되는 돈’이라는 표현은 적어도 딥테크 분야에서는 엄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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