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년 만에 재개봉해 10만 관객…'노 CG'·로케이션 영상미로 입소문
"다신 못 나올 영화…특수효과, 아무리 훌륭해도 시간 지나면 구식 돼"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6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열린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 기자간담회에서 타셈 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영화는 2006년 개봉한 영화 '더 폴'을 감독의 의도에 맞게 재편집한 감독판으로 지난해 재개봉했다. 2025.2.6 scape@yna.co.kr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타셈(본명 타셈 싱 단드워) 감독의 '더 폴: 디렉터스 컷'(이하 '더 폴')은 독립·예술 영화가 관객의 주목을 받는 최근 흐름 속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이다.
2008년 극장에 걸린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의 감독판인 이 영화는 재개봉작으로는 이례적으로 최근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지난해 12월 25일 전국 66개 관에서 재개봉할 때만 해도 대부분이 이 같은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뛰어난 영상미와 독특한 스토리로 영화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고 결국 장기 흥행에 성공했다.
"마치 이 영화가 부활한 거 같아요. 겨우 기어 다니던 아이가 20년이 지나서 갑자기 달리고 있는 걸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한국 관객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타셈 감독은 6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더 폴'이 한국에서 재조명된 사실이 놀랍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패션도 20년 뒤에 레트로(복고풍)로 다시 유행하는 경우가 있지 않으냐"면서 "제 영화도 비슷한 것 같다"고 웃었다.
"사실 영화를 만들 때만 해도 여자친구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에 젖어 있었어요. 20년이 지나 다시 관람하니 그때의 저는 상당히 어리고 야심 찼던 것 같네요. 지금의 전 '더 폴'을 못 만들 거예요. 제가 아닌 그 누구도 다시는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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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폴'은 1920년대 미국의 스턴트맨 로이(리 페이스)가 호기심 많은 어린 소녀 알렉산드리아에게 들려주는 모험담을 그렸다. 20여개국에 숨겨진 아름다운 풍경을 CG(컴퓨터 그래픽) 없이 담아낸 점이 특징이다.
타셈 감독은 세상에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지만, 있다면 꼭 보고 싶은 장소를 영화에 담겠다는 각오로 19년간 세계 곳곳의 비경을 찾아다녔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식물원, 악바르 황제의 무덤인 인도 아그라 시칸드라, 히말라야 판공 호수 등이 영화에 등장한다.
그는 "아무리 훌륭한 특수효과를 사용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구식으로 보이기 마련"이라면서 "마법 같은 공간을 촬영 장소로 선택한 만큼, 여기에 CG를 덮으면 모자 위에 또 모자를 쓴 느낌이 될 거라 생각해 CG는 활용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타셈 감독은 '더 폴'을 만들 때부터 비주얼에 방점을 둔 이 작품이 "반드시 오랫동안 살아남을 영화"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상영관의 환경이 지금처럼 좋지 않았던 때였지만, 당시 최신 기술이던 4K 화질을 고집한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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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첫 개봉 당시만 해도 영화계에서 '더 폴'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2006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상영 후 일부 평론가의 호평을 얻기는 했지만, 박한 평가가 대부분이었다고 타셈 감독은 돌아봤다. 마케팅 부족과 독립영화의 한계로 인해 수익 역시 제작비의 10분의 1 수준인 370만달러(약 53억원)를 올리는 데 그쳤다.
타셈 감독은 "왜 사람들이 옛날에는 이 영화를 안 좋아했는지 모르겠다"며 "만약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비평가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했다면 또 다른 결과가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지난해 캐나다 토론토에서 만난 평론가들이 '더 폴'을 칭찬한 일을 떠올리며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대가 지금 이 영화를 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미국에서도 '더 폴'을 상영했는데 몇 분 만에 매진돼 8주간 확대 개봉을 했다"며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 셈인데, 더 많은 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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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02/06 14:16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