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지역 바꾸는 건 좋은 기업"…전철 1호선 변화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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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지역 바꾸는 건 좋은 기업"…전철 1호선 변화의 교훈

“결국 지역을 바꾸는 건 좋은 기업과 양질의 일자리입니다.”

수도권에서 충남 천안·아산으로 이어지는 전철 1호선. 충남에 여러 온천이 몰려 있어 고령층의 온천행 열차이던 1호선이 2030 직장인의 통근 열차로 바뀐 과정을 취재하며 만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이구동성으로 얘기한 건 두 가지였다. 경기 화성에서 오산, 평택, 천안으로 연결되는 1호선 진화의 주역은 바로 기업과 일자리라는 설명이다.

실제 화성(2000년)과 평택(2017년)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자 전·후공정을 담당하는 국내 협력사가 몰려들었다. 탄탄한 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되자 ASML, 램리서치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도 ‘테크 라인’으로 바뀐 1호선 대열에 합류했다.

좋은 기업이 모이자 자연스레 주거 인프라도 개선됐다. 2004년만 해도 논밭으로 가득하던 화성시 동탄은 젊은 직장인들로 북새통을 이루며 어느덧 인구 40만 명이 넘는 첨단 기업 도시로 탈바꿈했다. 오산과 평택 인구도 같은 기간 각각 13만 명, 38만 명에서 24만 명, 60만 명으로 늘었다.

1호선 근교 도시 발달로 고급 연구개발(R&D) 인력의 ‘구직 남방한계선’도 경기 남부와 충청권으로 내려왔다. 서울과 판교만 고집하던 테크 기업 중 적잖은 곳이 경기 이남으로 본사나 R&D센터를 옮긴 데 따른 변화다. 그간 경기 남부의 최대 약점이던 인재 확보 문제가 해결되자 저렴한 토지와 세제 혜택 같은 강점도 빛을 발했다.

이런 변화는 기업들의 해외 이전과 지방 소멸이란 만성 질환에 시달리는 우리 경제에 시사점을 던져준다. 좋은 기업과 일자리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시작점이란 사실이다.

2023년 국내 회사 2816개가 해외로 나가는 동안 국내로 복귀한 유턴 기업은 22개에 그쳤다. 정부가 토지매입금의 최대 50%를 지원하고 소득·법인세 5년 면제 등 파격적인 혜택을 쏟아냈지만 같은 기간 비수도권으로 본사를 이전한 기업은 19곳밖에 없다.

한 중소기업 CEO는 “어떤 혜택을 줘도 비수도권이 비용 측면에서 멕시코와 베트남을 뛰어넘을 순 없다”며 “그럼에도 기업이 한국에 남아 있는 건 세계 최고의 제조업 생태계와 우수한 인재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이 해외가 아니라 지방을 택할 수 있도록 해야 제2의 ‘1호선 변신 스토리’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의 바람이 이뤄질 수 있을까. 기업인들의 요구가 빗발쳐도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규제와 수년째 제자리걸음인 송전망 현실을 보면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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