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대재해 보험 가입도 버거운 영세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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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중대재해 보험 가입도 버거운 영세기업들

“문의는 급증했지만 가입 규모는 여전히 미미합니다.”

최근 만난 손해보험사 관계자에게 중대재해 배상보험을 묻자 들은 말이다. 손보업계에 따르면 삼성·메리츠·현대·DB·KB손해보험 등 국내 주요 5개 손해보험사가 판매한 중대재해 배상보험 신계약 건수는 작년 1115건이었다. 법이 시행된 2022년 209건에서 다섯 배 넘게 증가했다. 기업이 지급하는 원수보험료도 같은 기간 121억원에서 291억원으로 뛰었다. 2024년 국내 전체 사업체가 635만3673개인 점을 고려하면 중대재해 배상보험은 일부 기업 중심의 초기 시장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많다.

중대재해 배상보험은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뒤 본격적으로 판매됐다. 배상보험의 핵심은 중대재해 발생 후 기업이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금과 민사소송 비용을 보험금으로 보전하는 것이다. 특약에 따라 형사사건 방어 비용과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함께 담는다. 사업주가 형사사건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지급하지 않는다.

배상보험 가입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중대재해법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보험 가입 수요가 커져서다. 2022년 1월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2024년 1월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된다. KB손보를 제외한 나머지 4개사 기준으로 신계약 중 50인 미만 기업 비중은 2022년 2%에서 지난해 46%로 급증했다.

하지만 재무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에는 보험료가 상당한 부담이다. 중대재해 배상보험 보험료는 업종, 규모, 보장 한도에 따라 달라진다. 수백만~수천만원대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영세 사업장에는 작지 않은 고정비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 중대재해 전문 변호사는 “중소기업의 경우 합의금 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도 “고용노동부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보험 가입이 면책 사유로 고려되지 않아 장점을 체감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작년 발생한 중대재해 573건 중 60%가 50인 미만 기업에서 나왔다. 정작 사전 대비를 하려고 하니 비용 투입을 주저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자본이 풍부한 대기업이 사전 컨설팅과 안전 장비 확보, 중대재해 발생 후 사후 배상 및 소송을 버틸 여력이 충분한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산업 현장의 사망 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원칙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 구조는 예방 역량이 가장 부족한 영세 기업에 책임과 비용을 먼저 떠넘기는 쪽에 가깝다. 중대재해법 시행 4년을 맞은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 강화의 반복이 아니라 영세 사업장도 실제로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지원 체계의 재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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