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일본에 뒤처진 한국의 '對美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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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일본에 뒤처진 한국의 '對美 마케팅'

지난 7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을 찾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대미 투자 규모를 1조달러(약 1440조원)까지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처음엔 1년에 1조달러라는 줄 알고 ‘그럴 리가’라는 생각이 들어 숫자를 찾아봤다가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2023년까지 누적 기준으로 7833억달러를 투자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토대로 ‘세계 1위 대미 투자국’임을 강조했다. 미국 내 50개 주에서 일본이 투자 상위 3개국 중 하나이며, 39개 주에선 투자 1위 국가라는 도표도 찾을 수 있었다.

이 수치가 누적 투자액이란 건 일종의 ‘트릭’이다. 일본 정부는 7833억달러가 연간 투자액이라고 속이진 않았다. 버블 시기까지 포함한 일본의 누적 대미 투자액은 독일이나 캐나다조차 따라갈 수 없는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최근에도 일본은 여전히 대미 투자에서 ‘큰손’이다. 닛케이는 작년 일본의 대미 해외직접투자(FDI)가 크게 증가해 11조7300억엔(약 111조원)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측 자료를 보면서 우리의 해외 투자 마케팅이 너무 부실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최근 미국 정부에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FT)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를 바탕으로 2023년 대미 최다 투자국(215억달러)이 한국이라고 보도한 내용이다. 이는 ‘그린필드’라고 불리는 초기 투자 금액을 집계한 것이어서 투자가 몰리는 시기에 따라 순위가 크게 바뀔 수 있다. 2024년, 2025년 통계가 나오면 이런 말을 하기 힘들 수 있단 얘기다.

FT 보도가 기를 세워주긴 했지만, 한국 입장에서 미국 진출 기업들의 활동상을 두루 담아내 체계적으로 분석한 투자 통계는 없다. 가장 흔히 쓰이는 수출입은행의 해외 투자 통계(2023년 대미 투자액 380억달러)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직접 투자가 이뤄진 사례만 반영한다. 현지법인이 발생한 이익을 바탕으로 재투자하는 건 제외된다. 미국 상무부 자료를 활용한 일본의 7833억달러 수치가 최종 수혜국 개념을 바탕으로 일본계 기업의 투자 전반 내용을 포괄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일부 관계자는 “일본처럼 누적치를 쓸 경우 한국은 상대적으로 금액이 너무 적어 보인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나 급성장한 한국의 상황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 나쁠 이유가 없다. 10년 전이나 5년 전 대비 대미 투자액 상승폭을 따지면 한국만 한 곳을 찾기 힘들다. 보기 좋은 수치를 억지로 짜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열심히 투자하고도 우리 기업들의 활약상을 제대로 담아내는 통계가 마땅치 않은 것은 아쉽다. 그런 통계가 있는지 여부가 관세 등 협상에 미칠 영향까지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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