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세계가 AI 총력전 펼치는데 미적대기만 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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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세계가 AI 총력전 펼치는데 미적대기만 하는 정부

“장관님, 미국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미 정부 출자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핀테크 유니콘 한국신용데이터(KCD)의 김동호 대표가 최근 열린 중소벤처기업부 간담회에서 오영주 장관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장관이 대답이 없자 김 대표는 말을 이었다. “0원입니다.” 김 대표는 이어 “미국 정부는 인공지능(AI) 트레이닝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을 제한하는 기존 행정명령을 폐지했다”며 “규제만 사라지면 (기꺼이) 투자하겠다는 민간 기업들의 협조를 이끌어낸 것”이라고 했다.

올초부터 글로벌 테크업계에선 ‘빅 뉴스’가 쏟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 일성으로 스타게이트라는 5000억달러짜리 초대형 AI 인프라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전까지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는 가성비 AI 모델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국내에도 충격파가 퍼지면서 정부, 지방자치단체, 국회 등이 저마다 AI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테크 현장에선 번지수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미로를 헤매는 것 같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속도와 방향 측면에서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정규 래블업 대표는 중기부 회의에서 “정부 과제는 연 단위로 가는데 AI 기술 변화는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고 꼬집었다. 이용재 매스프레소 대표도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버티컬 AI 영역은 호흡이 빨라서 거의 주 단위로 서비스가 바뀔 정도”라고 말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얼마 전 자신의 블로그에 AI의 발전 속도를 언급하며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AI 성능이 개선되고 있다”고 썼다.

테크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우선 데이터 활용 규제만이라도 해법을 찾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딥시크는 중국이 자유롭게 데이터를 풀어줘서 모델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한국에선 데이터 확보가 어려워 데이터 특례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중이 촉발한 AI 패권 전쟁은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AI를 학습시키고 운용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와 인프라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경쟁의 향방을 가른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한 번 뒤처지면 추격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골든 타임’이 지나가기 전에 명확한 방향과 비전을 갖고 AI 경쟁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지금의 광풍이 지나가면 정부는 여러 스타트업에 1억~2억원씩 찔끔찔끔 정책 자금을 나눠주는 것으로 마치 일을 다 한 것처럼 생색을 낼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현장의 체념 어린 전망이 기우로 판명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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