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블러핑도, 조변석개도 아닌 트럼프 2기 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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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블러핑도, 조변석개도 아닌 트럼프 2기 관세

“미국이 설마 제 살을 깎아 먹으면서 멕시코에 관세를 부과할까요?”

지난달 23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연 미국 신행정부 멕시코 통상정책 대응 민관회의. 한 대기업 관계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은 협상용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자 대부분의 참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기껏 멕시코로 공장을 옮겨놨는데, 멕시코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건 자해와 다름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멕시코에 가장 많은 외국인직접투자(FDI)를 한 나라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2년까지 총 2300억달러를 투자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멕시코에 관세를 부과하려는 진짜 이유는 마약과 불법 이민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 1기 때도 멕시코에 관세를 부과하려다가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으로 선회했던 만큼 이번에도 협상을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기대가 무색하게도 미국은 4일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 관세 25%,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확정했다. 우리 기업의 주요 우회 수출로인 멕시코가 ‘글로벌 관세 전쟁’의 한복판에 들어갔는데 통상 당국에선 ‘미국이 이렇게 전격적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나온다.

트럼프는 자신의 1기 주요 성과인 USMCA를 무효화하고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공언한 보편관세 부과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폐기를 정말 실행에 옮길 태세다. 새로 언급한 반도체, 철강, 알루미늄, 의약품 등에 대한 ‘품목 관세’를 추가 도입한다면 국내 수출 기업의 타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정부는 대미 아웃리치(소통·접촉)를 강화하고, 미국산 에너지·농산물 수입을 확대하며, 일본·대만 등 다른 대미 수출국과 공동 대응하겠다는 대책을 세웠다. 그러나 국내 가스·석유 수입은 이미 대규모 계약으로 묶여 있어 미국으로 방향을 트는 데 시간이 소요된다. 다른 수출국도 똑같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 공동 대응이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전쟁의 후폭풍에 대해 “파괴적 영향이 있겠지만 미국민은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 협상을 위해 블러핑을 일삼고, 조변석개하던 1기 때와는 다르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세계 무역의 판도를 미국 주도로 다시 짜겠다는 독기가 느껴진다.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 시장의 타격은 불가피해졌다. 그런데 정부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설마설마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한국 경제가 처한 환경이 너무나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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