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왕고래 '실패'로 여기면 자원개발 미래 없다

1 month ago 7

[취재수첩] 대왕고래 '실패'로 여기면 자원개발 미래 없다

“동해 가스전은 11번째 시추에서, 가이아나 유전도 13번째 시추에서 (각각 가스) 발견에 성공했습니다. ”

산업자원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 6일 ‘대왕고래’로 알려진 동해 영일만 심해 가스전 1차 탐사 실패 결과에 대해 “대왕고래에서 발견된 가스 징후가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첫 번째 시추의 나쁜 결과로 유전 개발을 중단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부 발표 다음 날인 7일 다수 언론은 ‘대왕고래가 사실상 실패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더불어민주당을 위시한 야당은 “정부·여당과 대통령이 꾸민 사기극”이라며 이 사안을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감사원 감사 청구, 국회 국정조사를 해야 할 사안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전문가들은 첫 시추 결과로 프로젝트 전체를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섣부르다고 경고한다. 이번 정부 발표는 작년 6월 정부와 석유공사가 공개한 7개 유망구조(석유·가스 존재 가능성이 있는 지층) 중 하나인 대왕고래를 파본 결과다. 학계에선 첫 탐사 시추에서 ‘완전 실패’를 의미하는 이산화탄소 대신 석유 시스템(석유가 생성되는 지질적 환경)이 발견됐다는 것만으로도 추가 시추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한국은 지금도 1360억달러가 넘는 에너지를 수입하는 자원 빈국이다.

유전 시추 시도와 실패와 반복은 자원 개발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한 차례만 파보고 시추를 중단했다면 한국을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게 해준 동해 가스전은 없었다. ‘석유 로또’로 불리는 가이아나 유전은 ‘오일 메이저’인 셸이 시추를 포기한 이후 엑슨모빌이 찾아냈다. 노르웨이는 4년여간 탐사 시추 끝에 1969년 북해에서 에코피스트 유전을 발견했다. 험난한 북해에 뚫은 시추공만 33개다. 노르웨이 정부는 이런 북해 유전을 통해 2600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국부펀드(NBMI)를 굴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홍보했다는 이유로 대왕고래가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미 정부와 석유·가스 공사엔 이명박 정부의 해외 자원 개발 후폭풍으로 ‘자원 개발 트라우마’도 짙게 드리워 있다. 이번 시추 실패로 사업 자체를 완전히 중단한다면 앞으로 어떤 기업도 석유 탐사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올해 석유 탐사 관련 예산을 모두 삭감당한 정부는 국내외 투자를 받아 동해에서 추가로 시추해볼 계획이다. 이젠 정쟁에서 벗어나 과학과 국익 차원에서 유전에 접근해야 할 때다. 시추 한 번 실패했다고 산유국의 꿈을 접을 필요까진 없지 않은가.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