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미국 내 딜러(현지 판매사)가 25%의 관세 부담을 반반씩 나누자고 압박해 오고 있습니다. 이걸 떠안으면 적자를 보면서 팔아야 할 상황입니다.”
굴착기 부착 장비 국내 1위 기업인 대모엔지니어링의 김기용 사장은 12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마련한 ‘미국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에 따른 수출 중소기업 현장 간담회’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연 매출 500억원대인 이 회사는 대미 수출이 100억원 규모로 매출의 5분의 1에 달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예고해 온 수입 철강·알루미늄의 25% 관세 조치가 한국 시간으로 12일 오후 1시 발효됐다. 관세 부과 대상엔 철강·알루미늄 강판을 비롯해 중소기업이 주로 생산하는 볼트, 너트, 스프링 등 파생상품까지 166개가 망라됐다. 그간 ‘우려’의 영역이던 관세 압박이 이젠 ‘현실’이 된 것이다.
이번 간담회에 참석한 중소기업 대표들이 전한 현장의 목소리는 구체적이면서도 절실했다. 반도체 공장 건설에 들어가는 금속패널 내장재를 생산해 수출하는 광스틸의 곽인학 대표는 “미국 내 업체 대비 40%의 가격 경쟁력이 있었는데 25% 관세에 물류비 상승분 등을 감안하면 강점이 아예 사라진다”며 “정부가 미국 무역대표부, 상무부와 협상을 조기에 추진해 관세 면제 확대와 기존 무관세 쿼터제를 유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수출 선적 등 다른 분야의 문제도 제기됐다. 자동차 부품인 와셔를 생산하는 세인아이앤디의 오원현 대표는 “미국 정부가 중국 선사를 이용하면 선박당 100만달러, 중국 선박을 쓰는 선사엔 150만달러를 부과한다는데 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선박의 90%가 중국 선박”이라며 “긴급으로라도 물류비에 대한 수출 바우처 지원 한도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쓴소리도 나왔다. 산업용 볼트·너트를 제조하는 신진화스너공업의 정한성 대표는 “지금처럼 국내 시장에서 중국산 저가 제품이 아무 제재 없이 방치되는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국내에서 볼트·너트 생산이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며 “세계 모든 국가가 자국 보호주의 정책을 우선하는데 우리 제조업은 누가 지켜주는 것이냐”고 일갈했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에서 절실한 기업인들의 우려를 씻어줄 구체적인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중기부는 미국 수출 중소기업 1815개를 대상으로 긴급히 수출 애로 및 정책 필요사항에 관한 설문조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입장에선 트럼프 관세 조치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 섣불리 나서기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사태가 터진 뒤에야 현장 목소리를 듣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