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부터 여권 발급비가 5만3000원에서 5만원으로 인하됐다. 외교부가 여권 발급자로부터 떼던 국제교류기여금을 3000원 삭감한 결과다. 이 부담금은 부유한 해외여행객에게서 기부금을 걷겠다는 취지로 1991년 도입됐다. 하지만 해외여행객이 2000만 명에 달하는 최근에는 징수 목적이 퇴색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3월 국제교류기여금을 비롯한 부담금 91개 가운데 32개를 폐지(18개)·감면(14개)하는 구조조정 대책을 발표했다. 부담금은 세금이 아니지만 특정 공익사업에 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공공기관이 부과하는 일종의 요금이다. 일반 세금과 달리 영화관람료, 각종 면허 발급비에 녹아 있다. 정부는 부담금 구조조정으로 2023년 기준 23조3000억원에 달하는 부담금 가운데 2조원가량이 삭감될 것으로 봤다.
부담금은 국민 호주머니를 슬그머니 터는 만큼 ‘그림자 조세’로 통한다. 내는 줄도 모르고 납부하는 경우가 많아 조세 저항도 거의 없다. 안다고 해도 부담금을 내려달라고 굳이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
정부로서는 조세 저항 없이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는 부담금은 반가운 존재다. 1961년 도입된 부담금 제도는 2023년까지 구조조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2002년 7조5000억원이던 부담금이 20년 새 세 배 넘게 불어난 배경이다. 폭증하는 부담금을 가리켜 ‘꼼수 증세’라는 비판도 나왔다.
정부가 부담금 구조조정에 나선 건 그만큼 통큰 결심이었다. 국민 편의를 위해 손쉽게 재정을 메울 방법을 포기해서다. 그런데 국회의 비협조로 구조조정에 제동이 걸렸다.
개발부담금과 장애인고용부담금, 연초경작지원 출연금을 비롯한 13개의 부담금 폐지·감면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해 기준 3900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야당은 나라 살림살이를 훼손할 수 있다며 부담금 구조조정에 반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대표 정책인 만큼 어깃장을 놓는다는 지적도 있다.
심지어 이미 폐지한 부담금을 되살리려 하고 있다. 영화표를 살 때마다 입장권 가격에 3%씩 붙여 징수한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은 올해 초 폐지되자마자 부활 수순을 밟고 있다. 관련 법안이 지난달 여야 합의로 관련 상임위를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국회가 정책 혼선을 불러온 것은 물론 국민의 그림자 조세 부담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