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과 협의하고 싶은데 바뀐 담당자를 만나기 어렵네요. 혹시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나요?”
이달 초 방한한 미국 대체거래소(ATS) 블루오션의 랄프 제이먼 최고경영자(CEO)가 인터뷰를 마친 직후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블루오션은 지난해 8월 ‘블랙먼데이 사태’ 당시 빚어진 시스템 장애와 관련해 재발 방지책을 제시한 상태다. 정규 거래소에 준할 정도로 대량 거래를 소화할 수 있는 멤버스익스체인지(MEMX) 시스템을 구축하고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면 최대 25만달러까지 보상한다는 게 골자다. 다만 작년 사고는 소급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블루오션은 작년 장애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국내 낮 시간(오전 9시~오후 5시)에 미국 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를 국내 19개 증권사에 제공했다. 대량 시스템 장애 때 총 9만여 개, 6300억원 규모 거래가 일괄 취소됐다. 서학개미 피해가 커지자 책임 소재를 놓고 공방이 이어졌다.
보상뿐만이 아니다. 미국 낮 시간 주식 거래 재개는 투자자에게 큰 관심사다. 갑작스러운 이슈 발생에 따른 시황 변동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반년 넘게 재개 여부가 결론 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애초 블루오션의 대응을 지켜보겠다고 했으나 재발 방지책이 공개된 후에도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당사자인 블루오션이 당국 연락처까지 물어봤을까.
증권사들도 다르지 않다. 블루오션의 보상안이 충분한지, 투자자 보호 조치가 어떤지 의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당국 방침을 지켜보고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증권사 실무자 사이에선 “당국이 ‘정규 거래소 외엔 거래하지 마라’ 또는 ‘대체거래소와 거래하려면 복수로 계약하라’는 등 지침을 제시해주면 좋겠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다. 섣불리 거래 재개에 나섰다가 당국에 미운털이 박힐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한다.
당국과 증권사가 미적거리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투자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낮 시간 미국 주식을 거래할 기회가 사라졌다. 미국 주식을 기반으로 한 영국 상장지수펀드(ETF) 수요가 늘어나고 있을 정도다.
금융투자업계에선 미국 주식의 낮 시간 거래가 연내 재개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워낙 골치 아픈 이슈인 데다 금융당국의 관련 업무 담당자도 최근 바뀌었다.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성을 고려하면 미국 정규 거래소 진입이 최선이지만, 내년 상반기에나 도입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서학개미의 불편이 최장 2년간 지속될 있다는 의미다. 당국과 증권사들의 눈치 보기가 계속되면 투자자 피해만 커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