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메이션산업이 발전하려면 일단 투자가 살아나야 합니다.”
지난주까지 국내 애니메이션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얘기는 투자 부활이었다. 정부 투자가 선행돼야 애니메이션을 안정적으로 제작할 생태계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애니메이션 시장이 움츠러들어 제작 중단이나 구조조정이 일상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목소리였다.
그동안 돈이 모이지 않자 K애니메이션 업계가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건 유아용 시장이다. 2003년 등장한 ‘뽀롱뽀롱 뽀로로’와 ‘꼬마버스 타요’(2010년), ‘신비아파트’(2014년)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미국과 일본이 거대 자본으로 제작한 지식재산권(IP) 애니메이션에 대응하려는 자구책이었다.
이런 전략도 2015년부터 국내 출산율이 급락하면서 한계에 부닥쳤다. 영유아 인구가 줄자 ‘마당을 나온 암탉’(2025년 재개봉)이나 ‘사랑의 하츄핑’(2024년) 같은 ‘가족 애니메이션’으로 출구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모든 애니메이션 기업이 시장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건 쉽지 않다. 하츄핑을 만든 SAMG엔터테인먼트의 김수훈 대표는 “하츄핑 IP를 만들고 극장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데 8년이나 걸렸다”며 “이렇게 오랜 시간을 견딜 기반이 약하다 보니 당장의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사실상 외면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1년 500억원 규모의 ‘애니메이션 전문 펀드’를 2025년까지 출범하겠다고 밝힌 뒤 올해 펀드 규모를 200억원으로 축소한 게 단적인 예다. 신창환 한국애니메이션제작협회장은 “애니메이션 1회 방영분에 35억원이 필요한 걸 감안하면 최소 1000억원 규모의 애니메이션 전문 펀드가 나와야 K애니메이션이 일어날 기반을 닦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달리 정부·민간 투자가 활발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기반은 탄탄하다. 애니메이션 제작 때부터 광고사와 방송사, 완구업체 등이 모두 참여해 투자·배급·유통 과정을 조율하는 ‘제작위원회 제도’는 중소 업체가 대부분인 한국이 참고해볼 만하다. 이렇게 하면 중소 업체 단독으로 투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유럽은 정부 중심의 지원 제도가 잘 마련돼 있어 한국에 비해 손쉽게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수 있다.
한국도 일본이나 유럽처럼 안정적인 애니메이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우선 정부 투자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애니메이션 업계의 공통적인 지적에 정부도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