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는 늘 돈과 시간에 쫓겼다. <죄와 벌>을 쓸 무렵에는 극한 상황에 몰렸다. 형과 함께 시작한 잡지와 출판사가 연달아 망하고, 갑자기 세상을 뜬 형의 빚을 떠맡은 데다 형수와 조카들의 생계도 책임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도박 빚까지 짊어져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간신히 월간지에 <죄와 벌>을 연재하기 시작했지만 굶기를 밥 먹듯 했다. 1866년, 그의 나이 44세 때였다.
시간 아끼려 옷 벗고 집필한 위고
돈이 급한 그는 그해 10월 4일 다른 출판사와 선불 계약을 맺었다. 조건은 ‘11월 1일까지 새로운 장편소설을 완성하지 못하면 향후 9년간의 출판권을 모두 넘긴다’는 것이었다. 마감까지는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죄와 벌>만으로도 밤을 새울 판인데, 그사이에 새 작품까지 써내야 하다니! 피가 말랐다. 다급해진 그는 속기사를 구해 밤낮으로 구술하며 미친 듯 받아 쓰게 했다. 그렇게 해서 27일 만에 <노름꾼>을 탈고했다. 마감 하루 전 원고를 넘긴 그는 출판권을 빼앗기는 위기를 모면했다. 이 와중에 <죄와 벌>의 최종회 연재 원고까지 완성했다.
그의 초인적인 집중력은 압박과 몰입 덕분이었다. 시간 압박이 강할수록 몰입력은 커진다. 이런 ‘압박형 창작’ 유형은 의외로 많다. 프랑스 작가 발자크는 여러 소설을 겹치기로 연재하면서 날마다 마감 시간과 싸웠다. 출판과 인쇄업에 연거푸 실패한 그는 빚을 갚기 위해 하루 15시간씩 글을 썼다.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50잔이나 마셨다. 그렇게 전력투구한 결과 90여 편의 장편과 중편, 30편의 단편, 5편의 희곡을 남길 수 있었다.
알렉상드르 뒤마도 신문 소설을 한꺼번에 연재했다. 43세 때인 1844년에는 <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 <여왕 마고>를 함께 써냈다. 마감 시간을 지렛대로 삼은 ‘압박형 창작’ 덕분에 그의 작품 수는 250편이 넘는다.
<파리의 노트르담>을 쓴 빅토르 위고는 작품에 집중하기 위해 옷을 벗고 회색 숄과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집필에 몰두해 5개월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보험회사 직원인 카프카도 매일 새벽과 밤에 집중한 결과 3주 만에 ‘변신’을 썼다. 이들은 ‘몰입형’의 대표적인 사례다. 바쁜 변호사 생활 속에서 새벽과 밤에 글을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존 그리셤 역시 ‘몰입형 작가’다.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는 1차 세계대전 때 자원봉사 간호사로 근무하며 창작을 병행했다. 병원에서 약물과 독극물 지식을 쌓은 그는 전쟁 중에 틈틈이 쓴 글로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을 출간했고, 이후 <오리엔트 특급 살인> 등으로 이름을 날리며 ‘세계 최다 판매 추리 작가’가 됐다. ‘공포 소설의 제왕’ 스티븐 킹은 세탁소 직원과 영어 교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틈틈이 글을 썼다. 이들은 ‘틈새 시간형 작가’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바빠도 매일 일정한 시간을 글쓰기에 바치는 ‘루틴형’ 또한 눈길을 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5시에 일어나 5시간 이상을 꼬박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장편소설을 쓸 때는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장을 반드시 채운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매일 6시간 글쓰기를 40여 년째 이어오고 있다. 오전 8시부터 낮 12시30분, 저녁 6~7시엔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쓴다.
문인들만 그런 게 아니다. 위대한 화가들의 명작도 시간 압박 속에서 탄생했다.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영묘를 장식할 묘비 조각에 집중하던 중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라는 명을 받고 20m 높이의 작업대에서 혼자 500㎡ 규모의 세계 최대 걸작을 완성했다. 보통 화가들이 50㎡짜리에도 3년이나 걸리는데, 그는 500㎡를 4년 만에 끝냈다.
렘브란트는 초상화 주문이 물밀듯 들어오는 상황에서 암스테르담 자경단협회의 요청으로 초대형 집단인물화 ‘야경(夜警)’을 그렸다. 기존의 정적인 구도를 깨고 극적인 움직임과 빛의 효과를 극대화한 이 그림을 통해 그는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시대를 활짝 펼쳤다. 고야도 스페인 왕실 화가로 시간에 쫓기는 중 전쟁의 참상을 그린 ‘1808년 5월 3일’을 제작했다.
절박한 순간이 낳은 불후의 명작
음악가들은 어떤가. 바흐는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매주 새로운 칸타타를 작곡해야 하는 일정 속에서 대작 ‘마태수난곡’을 완성했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도 다른 작업으로 눈코 뜰 새 없는 중에 만든 작품이다. 베토벤은 연말 연주회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불후의 명곡 ‘교향곡 5번’(운명)과 ‘교향곡 6번’(전원)을 병행 작곡했다. 차이콥스키도 발레곡 ‘백조의 호수’ 작업 중 ‘1912년 서곡’을 6주 만에 완성했다.
이렇듯 바쁠 때 좋은 성과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놀라운 집중력과 함께 창의적인 사고력, 심리적인 동기부여, 신체적인 호르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의 압박은 우리의 창의력을 자극한다. 데드라인은 집중력을 극대화한다. 심리적인 동기부여, 자기 효능감이 커지면 몰입도가 높아진다. 생리적으로 코르티솔과 도파민이 증가하면 집중력과 에너지가 급상승한다.
우리 두뇌와 신체는 마감이 다가올수록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이른바 ‘시간 압박 효과’ 덕분이다. 그러니 시간에 쫓긴다면 먼저 데드라인부터 설정해 보자. 그리고 몰입할 환경을 조성하자. 위고처럼 외부 영향을 차단하는 것도 좋다. 또 루틴을 만들자. 아무리 바빠도 일정 시간을 꼭 투입하자. 가장 바쁠 때와 가장 절박할 때 창의성은 최고조에 달한다. 지금 바쁜가?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당신의 걸작을 만들 최고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