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전투기 오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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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3.11 17:30 수정2025.03.11 17:30 지면A31

[천자칼럼] 전투기 오폭

포병 부대에선 원을 360개로 나눈 ‘도’ 대신 6400개로 쪼갠 ‘밀’이라는 단위를 쓴다. 포신의 방향이 1도만 틀어져도 타격 지점은 큰 차이가 난다. 방향을 밀로 잘게 쪼갠 덕분에 155㎜ 곡사포는 1밀을 잘못 입력해도 명중 오차가 1㎞에 1m 정도에 그친다.

정확히 포격하려면 날씨도 챙겨야 한다. 포탄 고도별 구획을 지어 구간 풍향·풍속·공기 온도·밀도 등을 2시간마다 점검해 사격 제원을 수정한다. 포탄이 날아가는 동안 지구의 자전까지 보정 대상이다. 포대 사격지휘병(FDC)은 눈 감고도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매일 훈련한다. 수분 안에 모든 과정을 끝내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

포 사격이 이럴진대 파괴력이 훨씬 큰 전투기 폭격은 더욱 엄정함과 정확함이 요구된다. 현대전은 폭격에서 승패가 갈린다. 미국이 걸프전을 손쉽게 치른 것은 개전 첫날 F-117 폭격기로 적 대통령궁, 방송국, 군 사령부, 교량, 발전소 등을 무력화한 덕분이다. 우크라이나가 군사 강국 러시아에 놀랄 정도로 버티고 있는 것도 드론 등을 활용한 정밀 폭격의 공이 적잖다.

오폭은 단 한 번일지라도 치명적 결과로 이어진다.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은 국제구호단체 활동가들 오폭, 병원시설 오폭 등으로 큰 곤란을 겪으며 전쟁 초기 주도권 확보에 고생했다. 오폭의 군사·정치적 여파가 워낙 크다 보니 실전에선 전파 장애 장치를 활용해 적 전투기의 오폭을 유도하는 전술이 일상적이다. 전투기 조종사에게는 신중함과 꼼꼼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덕목이다.

그런 점에서 파주 전투기 오폭 사고는 어처구니없다. 조종사가 비행임무계획장비(JMPS)에 15자리의 경도·위도 중 한 자리를 ‘5’에서 ‘0’로 오입력한 탓이라는 게 공군 브리핑이다. ‘5’와 ‘0’은 자판상 거리가 있고, 모양도 다르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훈련 일정에 맞춰 표적 좌표를 하루 전에 입력한 상태에서 벌어진 사고라는 점도 실망스럽다. 미리 준비하고도 오폭을 막지 못했다는 얘기다. 훈련은 가혹하고 힘들수록 좋다. 실전은 훈련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지옥이기 때문이다.

김재후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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