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한국 주식 부호 1위(6일 기준 12조4334억원)에 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12조1667억원)도 제쳤다. 금세기 들어 국내 재벌가에 조 회장만큼 드라마틱한 성장 스토리를 쓴 이도 드물다.
그는 재벌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한진그룹 고(故) 조중훈 창업주의 4남1녀 중 막둥이다. 막내여서 차별받는 시절이었다. 창업주가 2002년 세상을 떠난 뒤 첫째는 항공(대한항공), 둘째는 조선(한진중공업), 셋째는 해운(한진해운) 등 그룹의 핵심 3사를 꿰찼다. 넷째에게 돌아간 것은 상대적으로 작은 한일증권, 동양화재였다. 지금의 메리츠증권, 메리츠화재다.
두 회사는 2005년 한진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후에도 별다른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2011년 시가총액이 고작 2000억원 수준이었다.
메리츠의 성장 속도는 주가가 말해준다. 현재 시총은 24조2500억원으로 불어났다. 계열 은행도 없이 신한금융지주(23조3300억원)를 넘어섰다. 그 비결을 물어보면 답은 한결같다. 오너가 경영에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조 회장은 철저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만들었다. 2010년께 김용범, 최희문 부회장을 잇달아 영입한 뒤 현재까지 믿고 맡기고 있다. 이 체제에서 골드만삭스 뺨치는 메리츠 특유의 성과 보상 문화를 완성했다. 메리츠에선 승진 연한이 따로 없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임원이 될 수 있고, 사장단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게 철두철미한 성과 평가다. 메리츠 사장단은 임직원 개개인을 성과 평가하는 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다. 업계 최고의 인재가 메리츠로 향하는 이유다.
조 회장을 1위 주식 부자로 만들어준 것은 지배구조다. 쪼개기 상장이 논란이 된 2022년 메리츠는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흡수합병한 뒤 메리츠금융지주로 합쳤다. 조 회장은 자녀 승계를 하지 않고 주주환원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했다. 발표 이후 지주사 주가는 245% 급등했다. 오너의 기업가정신은 직접 경영 현장을 지키지 않아도 뛰어난 용인술로 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조 회장이 잘 보여주고 있다.
조진형 마켓인사이트부장